3월로 들어서자 몸과 마음이 모두 분주해졌다. 나무를 심을 생각에서다. 작년 봄에 시기를 놓치고 집 주변에 나무를 심지 못해 늘 아쉬웠는데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논에다 지은 집이라 주변에 큰 나무를 몇 그루 둘러야 할 것 같은데 겨울 내 어떤 나무를 어디에 심으면 좋을지 궁리하고 생각해 두기는 했지만 막상 나무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심은 나무는 동백이다. 울산에 다니러 갔을 때 정우규 선생과 같이 진즉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동백을 구했던 것이다. 제법 모양이 괜찮은 것 두 그루를 샀는데 워낙에 추운 지역이라 무사히 적응할지는 모른다. 잘 살아만 준다면 더 없이 좋은 관상수가 될 것이다. 동백과 함께 황 선생님 댁에 들렀다가 집 앞의 해당화와 앵두나무 어린 것을 얻어 같이 가져왔다. 큰 동백과 해당화는 집 입구 화단에, 작은 동백과 앵두는 뒤 쪽 장독대와 수돗가에 심었다.
3월 초 옆에 새로 집을 지으면서 동네 할머니가 키우던 나무들을 캐내야 했는데 그 중 오가피를 몇 주 얻어 앞 논 중간 턱에 심었다. 모양은 없지만 약재로 좋다고 하니 심어본 것이다. 작년에 얻은 제피나무와 엄나무 사이에 심었다. 잘라낸 가지는 물을 끓일 때 넣었더니 맛이 괜찮았다.
남원에 나무시장이 있다고 하기에 찾아갔더니 큰 규모는 아니고 어린 묘목을 몇 가지 파는 정도였다. 제법 줄기가 굵은 배롱나무가 나와 있어 한 그루를 사고, 우리나라 고유종인 미선나무 묘목이 보여 한 주 같이 샀다. 오는 길에 인월 장에서 작년에 보았던 묘목상을 만나 왕대추와 산수유 묘목 두 개, 그리고 작은 매화 한 그루를 샀다. 매화는 가지가 구불구불한 운용매라고 하는 소품이었는데 소나무 밑 돌 사이에 심었더니 자리에 잘 어울리고 꽃망울도 맺혀 곧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롱나무와 산수유는 앞턱에 심었다.
나무를 길러 파는 좋은 농원이나 조경원 같은 곳이 어디 없나 수소문 했지만 제대로 알 수 없어 답답했는데 남원 초입의 요천이라는 동네를 지나다 우연히 길가에 심어 놓은 나무를 보고 찾아 들어간 곳이 이흥구 사장의 집이었다. 이 분은 오래전부터 나무를 캐다 심기도 하고 길러서 팔기도 하는데 집 주변과 인근의 논과 밭에 상당히 많은 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사람이 좋아 보이고 장사 속으로만 거래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나무를 들러본 뒤 우리 집을 한 번 방문해주기를 부탁하였다. 집 주변에 심을 나무의 위치나 수종을 결정하는데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흥구 사장이 집으로 찾아와 주변을 살펴보고 간 뒤 다시 남원으로 나가 본격적으로 나무 고르기를 하였다. 우선 매화 큰 것을 한 그루 찾아내고 벚나무 두 주와 단풍나무, 그리고 집 뒤에 심을 느티나무를 결정하였다. 모양이 구부러져 잘 생긴 자목련을 한 점 선택했고 화단에 있던 화살나무의 크기와 모양이 적당해 한 주 추가하였다. 철쭉 묘목을 개당 850원에 준다고 하여 100여개 같이 사기로 하고 견적을 내어보니 대략 80만원 정도였다. 나무를 옮겨 심는 비용도 나무 값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어차피 들여야 할 대가라 생각하고 날을 잡아 나무를 옮기기로 하였다.
나무 심을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그사이 감자를 심고 집 입구에 개나리를 삽목 하였으며, 뒷밭 위쪽 큰 나무사이에 끼어 시들어 가던 작은 배나무를 한 그루 캐내어 화단으로 옮겼다. 그 아래에 있던 어린 호두나무도 옮겨 심었다. 동쪽 화단에 큰 나무 심을 자리를 미리 잡아 놓고 표시를 해놓은 뒤 작년에 사서 심어 놓은 라일락, 마가목 등 작은 것들은 앞쪽으로 다시 자리를 잡아 주었다. 거실 앞의 능소화는 동쪽 담벼락 아래로 옮겼고 뒷담을 따라 심어 놓은 대나무에 거름도 주었다.
그리고 나무 심을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집 입구 미리 돌로 잡아 놓은 자리에는 잘 생긴 소나무를 한그루 심기로 하였다. 동쪽 화단에는 매화나 단풍, 목련 등 큰 나무를 심은 뒤 앞쪽으로 작은 나무들을 고르게 배치하고 연못 옆에는 늘어진 수양매를 한 그루 심으면 어울릴 것 같았다. 서쪽 데크 옆쪽으로 벚나무를 심기로 했고, 집 뒤 쪽 2층과 비닐하우스 사이의 허전한 곳에는 느티나무를 심어 크게 키우면 집도 가리고 좋을 듯하였다. 그러나 집사람이 다니러 와서 느티나무는 절대 안 된다고 극구 반대하여 결국 은행나무로 대체 하였다. 너무 잘 커서 집에 심으면 좋지 않다는 일반적인 생각 때문이었지만 내심 아쉬웠다. 아내와 인월장에 나가 목단과 당귀를 사다 심었다.
며칠 뒤 날이 풀리자 이틀에 걸쳐 나무를 옮겼다. 뿌리 부분의 흙을 파서 분을 뜨고 묶고 끌어내 차에 싣는 작업이나, 다시 집에 와 내리고 심고 물을 주고 마무리를 하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사람 손으로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잘못 심으면 심어 놓고도 죽이는 경우가 발생하니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은행나무가 생각보다 가늘어 조금 실망하였다. 집 주변에 큰 나무들을 배치해놓고 안에서 쳐다보니 비로소 집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무심기의 대미는 소나무였다. 워낙 까다롭고 옮겨 심으면 잘 죽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가장 뛰어난 자태에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길섶 강 사장이 소나무를 한 그루 캐가도 좋다고 했지만 야산의 소나무를 허가 없이 함부로 옮겼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고 옮기기도 만만치 않아 그냥 포기하고 사서 심기로 하였다. 공연히 잘 있는 나무를 건드리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마침 울산에 있는 정영호 선생이 생각났다. 몇 해 전 퇴직하였는데 두서의 내와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놓고 가꾸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연락을 해보니 지금은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생각이 있으면 싼 값에 가져가라고 했다.
산청의 김선생, 위쪽의 원선생 몫까지 다섯 그루를 사기로 하고 김선생 트럭으로 전날 저녁 울산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소나무를 캐는데 나무 옮기기가 그렇게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다. 내 키만한 반송 두 그루인데 파고 묶어 차에 싣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단속을 하고 출발할 때는 저녁 여섯시가 넘었다. 자정이 넘어 한밤중에 도착했다. 다음날 소나무를 겨우 내리고 끙끙거리며 심었다. 한그루는 집 입구에 한그루는 연못가의 능수매 자리에 심었는데 집 양쪽에 소나무가 들어서니 모양도 좋고 주변과 잘 어울려 흐뭇하였다. 중심이 되는 줄기만 남기고 잔가지는 거의 잘라 내었다. 연못가에 심은 소나무는 돌로 단을 쌓고 심었는데 보기는 좋으나 흙이 충분하지 못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었다. 무사히 뿌리를 내려야 할 텐데...
심은 나무들을 손보는 중에 산청의 김선생이 가죽나무를 구해놨다고 하여 가져왔다. 그리고 인월장에서 산목련 한 주를 6만원에 샀다. 일명 함박나무로 내심 구하고 싶었던 나무였다. 크기나 모양이 적당해 마음에 들었는데 살기만 하면 좋은 나무가 될 것 같다. 데크 옆 빈자리에 심었다. 이제 거의 큰 줄기는 마무리 되었다.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했다. 앞으로는 시간 나는 대로 주변의 작은 나무를 구하거나 장에 나가 과실수 등을 사 틈틈이 보충하면 될 것이다. 경비도 많이 들었다.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나무가 얼마든지 있는데 집안에 굳이 들이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욕심인 것 같기도 하나 쓸 때는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보다는 옮겨 놓은 나무들이 무사히 잘 자라는 일이 더 중요하다. 나무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잘 살아 같이 지내자고 부탁을 하였다.
고문진보에 탁타이야기가 있다. 옛날 중국에 나무를 잘 심는 달인이 있었는데 꼽추였다. 그래서 별명이 탁타인데 이 사람이 심은 나무는 언제나 건강하게 잘 자라서 장안의 귀족들이 너도나도 불러 나무를 심게 하였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떤 비법이 있느냐고? 그러나 탁타는 별다른 비법이 없다고 하였다. 단지 나무를 심을 때는 나무의 본성대로 정성을 다해 심지만, 일단 심은 뒤에는 다시 찾아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무가 잘 자라는지 살펴보고 건드리고 만져보고 함으로서 나무를 힘들게 하여 오히려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다. 사람을 기르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나도 이번에 심은 나무들을 될 수 있는 한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놔두어야겠다.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지만 죽는다고 해도 잘못 심었거나 환경이 맞지 않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무를 심으면서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다시 떠올렸다. 마흔 전후에서 이 글을 읽고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늘 황량한 골짜기에서 나무 심는 광경과 함께 생각나는 글이다. 쉼 없이 씨앗을 심고 가꾸어 숲을 만들고 사람이 다시 찾아오게 한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데, 그런 과정을 통해 묵묵히 그러나 쉬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입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입으로 환경운동하고 입으로 에너지 절약하고 입으로 자연보호 하는 사람들, 모이고 회의하고 발표하고 바쁘게 일하지만 정작 변화는 거의 없는, 소리만 요란한 빈 울림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느니 한 그루 나무를 심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신묘 새봄. 나무를 심고 나서.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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