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을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과일이 감일 것이다. 가을이면 어느 동네를 가도 붉게 익은 감을 볼 수 있고 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일이 감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감은 우리의 고향과 그 고향의 가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나무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어릴 적부터 가을이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가장 흔한 과일이기도 했으니 그만큼 친숙하고 잘 아는 과일도 없을 것이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인지라 익지도 않은 떫은 감을 따 먹다가 팽개치기도 했고 옷에 감물이 묻어 지워지지 않아 낭패를 당한적도 많았다.
감은 접대용으로, 과일이 없는 겨울의 요깃거리로, 또는 제사용수로도 사용했으니 과일이 흔하지 않았을 옛 시절에는 쓰임새가 많은 과일로 감만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감나무를 키우고 가을이면 정성스럽게 따서 다듬고 곶감을 만들어 저장했던 것 같다. 간혹 해거리는 하지만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가을이면 항상 풍성한 열매를 맺어내는 감은 특히 우리 조상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 온 나무다. 감나무 두어 그루는 반드시 집안에 심어야 할 정도로 우리의 감에 대한 애착은 유별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 시골에는 겨울이 다 되도록 감이 그대로 매달려 있는 나무들이 많다. 주로 노인들만 남아있는 시골에서는 감 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사먹는 사람이야 비싸다고 하지만 막상 따서 팔기로 들면 크게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감나무가 크게 자라면 나무의 생김새나 가지의 모양이 대단히 우아하며 멋스럽다. 감나무 잎 단풍도 아름답고 잎이 진 뒤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은 가을의 운치를 살려주는 듯 더욱 보기가 좋다. 집을 짓고 보니 감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집 입구에 한 그루, 뒷밭에 한 그루가 있지만 나이든 나무여서 그런지 감 열리는 것이 시원찮았는데 올 해는 그런 대로 감이 달렸다. 태풍에 많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법 남은 것들이 있어 가을이 되니 빨갛게 익어 보기에 좋았다. 있는 감을 방치하기도 그렇고 많지는 않아도 곶감을 깎아볼 생각으로 틈을 내어 감을 땄다. 그러나 감을 따보니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예부터 감나무는 함부로 올라가지 마라 했는데 눈에 잘 확인되지 않는 삭정이가 있어 떨어지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따기가 힘들어 그냥 놔둘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까치밥이 남게 된 셈이다. 기어이 따기로 한다면 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험을 무릅쓸 이유도 없지 않은가?
까치밥. '홍시 하나 남겨 놀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라고 김남주 시인은 이야기 했지만 옛부터 우리의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는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일상적인 것이기도 했다. 감을 딸 때 힘들고 위험해서 남겨 논 것을 까치밥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지만 악착같이 따지 않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무릇 모든 자연의 관계가 그렇다. 자기가 먹을 만큼의 수확을 했으면 나머지는 놔두는 것,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는 것, 그것이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철칙인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있는 사람은 더 풍족해지고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있는 자가 더 많이 가지겠다는 탐욕을, 더 많이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고, 대기업은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대형마트가 골목상권까지 넘보는, 기업주는 노동자를 인간이하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극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투쟁의 사회가 되어버린 탓이다. 당연히 약자는 더 큰 출혈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니 갈수록 그 차이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을 개발한다고 함부로 파헤치다가 끝내 인간의 삶이 위협받게 된 것처럼, 경제와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기층계급이 붕괴되면 결국 대기업이고 재벌이고 마찬가지로 무너지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인간의 순수성, 우리의 도덕성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감은 우리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순수의 뿌리와 그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과일이기도 하다. 봄철 감꽃 피는 때를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결코 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수한 것이지만 우리의 기억에 장독대 위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감꽃처럼 깊은 잔영으로 남아있는 꽃은 드물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오래 전 김준태 시인의 글을 읽으며 너무나 처연했다. 어릴 적 순수했던 마음이 전쟁의 상처를 안고 지금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렸으니, 나중에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온 날을 되돌아 볼 것인가? 이 시를 읽으며 가장 가슴에 꽂혔던 글귀가 첫 연이다. 감꽃, 우리의 어릴 적 순수를 대표하는, 입에 따 먹기도 했던 가난한 시절을 상징하는, 그러나 편안하고 행복했던 그 때를 눈물 나도록 상기시키는 단어가 바로 감꽃이었던 것이다.
한때 감나무 사진을 열심히 찍기도 했었다. 단순히 감나무의 모습이 아니라 붉은 감이 꽃처럼 열린 불상화의 모습을, 검은 가지와 붉은 감의 대비를, 구부러지고 균형 잡힌 줄기와 둥근 감의 조화를, 수묵화풍의 사진을 만들어 보려고 이리저리 각을 찾고 구도를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렌즈 속에 들어온 감나무의 모습에 새삼 감탄을 하기도 했다. 감나무 잎의 색감이 마음에 들어 그것을 주워 오기도 하고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왜 그렇게 감나무에 끌렸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주는 편안함,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수성을 자극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본다.
감은 고향을 떠오르게도 하지만 어머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노계 박인로가 품어가고 싶어했던 조홍감도 아마 늙은 노모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감, 감나무, 고향, 어머니 그렇게 연결지어지는 것 같다. 얼마전 오래된 어느 가수가 홍시가 익으면 어머니가 생각난다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슴 밑바닥에 숨어있는 우리들만의 따뜻한 인간적 감성, 그런 것들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도 역시 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잘 익은 홍시는 노인들이 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비타민 C가 풍부하여 감기예방에도 좋고 피부에도 좋다고 하니 나이든 사람의 간식으로는 더없이 좋은 식품이다.
유행처럼 한때 감나무 잎 차가 좋다고 하기도 했고 단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감은 역시 홍시나 곶감으로 먹는 것이 제격이다. 홍시는 저절로 되지만 아무래도 오래 저장하려면 껍질을 깎고 말려 곶감으로 만들어야 한다. 곶감용으로는 월하시가 좋은데 요즘은 대부분 대봉감을 선호한다. 크기 때문인 것 같은데 맛은 좀 덜한 편이다. 아랫동네인 마천도 곶감으로 이름이 있는데 알고 보니 감을 다른 곳에서 사온다고 했다. 씁쓸했다. 내 고향에는 월하시가 많았는데 지금 집에 있는 감도 그런 종류인 것 같았다. 한 그루에 한 접 정도는 땄지만 이미 홍시가 다 되었거나 익기 시작한 것이 많았고 단단하게 남아있는 것은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귀찮은 생각이 나 몇 번이나 망설이다 한 접은 그대로 저장하고 나머지는 곶감을 깎기로 하였다. 곶감은 품이 많이 들고 잘 건조시키기가 쉽지 않다. 날이 따듯하면 녹아내리고 비를 맞으면 썩거나 곰팡이가 핀다. 그래서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다 말리라고 하는데 적당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거실 앞 쪽 발아래에다 못을 치고 걸어놓았다. 혹 비가 오면 그리 많지 않으니 방안으로 들일 작정이다.
매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농협에 가보니 감을 매달 수 있는 플라스틱 도구가 있었다. 간단하면서도 손쉽게 감을 끼워 매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옛날에는 꼭지를 일일이 묶기가 번거로워 싸리나무 가지에 여러 개를 끼운 뒤 양쪽을 새끼나 줄에 걸어 말렸다. 가을볕이 좋은 날은 벌이 날아들기도 하고 달짝한 진이 흘러내려 개미가 꿰이기도 했다. 처마 밑이나 토방 위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은 가을이면 시골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감을 딴 김에 옛날 생각도 나고 겨울 먹을거리도 장만할 겸 곶감을 깎아보기는 했으나 처음 해보는 일이다. 많지는 않지만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한 겨울 추운 밤 뒤꼍의 큰 나무 위에 감추어 놓은 얼음 낀 홍시를 꺼내 먹던 일, 제사 때 새까맣게 진이 든 곶감을 맛있게 먹은 일 등이 생각난다. 곶감을 그렇게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옛날 옛적 눈 내리는 겨울밤, 그 무섭다는 호랑이도 쫒아낼 정도로 맛있었다는 곶감을 올 겨울에는 별미삼아 간혹 맛볼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추운 겨울이 더 기다려지기도 한다. 가끔 창고에 남은 홍시를 꺼내먹기도 하면서. 이런 것도 시골 사는 한 맛일 것이다. 무엇보다 곶감이 잘 익으면 명절날 감을 따로 사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곶감을 깎고 나서. 소은.
'지리산을 보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주를 끓이며 (0) | 2012.11.29 |
---|---|
실기(失期) (0) | 2012.11.19 |
천지감응 (0) | 2012.10.31 |
머무름이 없는 세상 (0) | 2012.10.02 |
상처받지 않은 삶이 있으랴? (0) | 2012.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