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앞에 앉아서 옛 여인네들의 심정을 생각해 봤다. 불을 때는 동안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집안일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보고 싶은 이나 멀리 떠난 자식 생각도 했을 것이다. 가끔은 남정네 생각을 하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다 타들어가는 불길을 보면서 모든 것은 저 나무처럼 사위어 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활활 타들어가는 불길은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기 까지도 했다.
메주를 삶는다는 것이 콩을 불리고 물에 씻어 솥에 넣은 뒤 네 시간여를 불을 때며 아궁이를 지키고 있어야 하니 예사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으니 다를 일을 볼 수도 없었다. 하릴없이 잔솔가지를 아궁이에 넣으며 불 앞에 앉아 이 궁리 저 궁리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장과 된장이 없는 식생활은 생각할 수가 없으니 옛날에는 쌀농사만큼이나 중요한 연중 행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잔손질이 너무 많이 가는 것이 흠이다.
끓어 넘치지 않도록 저어주며 서너 시간을 졸인 뒤 퍼냈다. 소쿠리에 담아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큰 비닐봉지에 담고 고무 통에 넣은 뒤 발로 밟기 시작했다. 뜨뜻한 감촉이 좋았다. 절구로 찧는 대신에 요즘은 튼튼한 비닐봉지에 담아 발로 밟아 콩을 뭉개는 이 방법이 주로 이용 된다. 적당히 으깨진 뒤에는 메주를 만들어야 한다. 물렁물렁한 반죽으로 네모난 메주를 만드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적당한 크기로 모양을 만든 뒤 판자 위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올려놓았다. 한 사흘 말린 뒤 하우스 안에 매달면 일차 작업은 끝나게 된다. 내년 봄에 메주를 띄워 장을 담그고 된장을 만들일 만 남았다.
콩을 수확한 뒤 잔챙이를 고르고 남은 양이 약 14키로 정도였다. 콩 한 되가 약 2키로 라고 하니 일곱 되라고 할 수도 있고, 콩 한 가마는 보통 70키로라고 하니 대두로 약 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끓일 수가 없어 두 번에 나누어 끓였는데 한 번 끓이는데 하루해가 몽땅 걸렸다. 전 날 물에 불려 논 콩을 아침에 씻어 고르고 불을 때기 시작해 오후 늦게 콩을 끄집어내고 밟아 놓은 뒤 메주를 만드는 일은 저녁 이후에야 할 수 있었다. 혼자서 하려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틀을 꼬박 콩 삶는데 매달리고 나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메주를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흐뭇하였다.
지난여름 태풍 때 떨어진 소나무 가지를 땔감으로 썼더니 불길도 좋고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불이 잘 붙고 냄새도 좋았다. 큰 가지 서너 개로 콩 한 말을 거뜬히 삶았다. 시골에선 무엇이든 다 쓰임새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요즘은 쓰고 남은 짧은 줄이나 철사, 나무토막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다 모아 놓는다. 종이 상자나 비닐 부대, 스치로폼 박스 같은 것도 모아 놓지만 너무 많이 남아 곤란할 지경이다. 요즘 세상은 그만큼 필요 이상의 포장지를 많이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비닐봉지는 더 그렇다.
지난주엔 고추장을 담았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고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어쨌든 항아리에 고추장이 담겨 장독대 위에 올라가 있다. 찹쌀이 다소 덜 풀려 개는 것 같아 솥에 넣고 한 번 더 볶은 뒤 넣었는데 맛이 어떨는지는 모른다. 어머니 말로는 처음 한 일치고는 90 내지 95점쯤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며칠 뒤 김장만 마치면 자급자족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는 거의 다 마친 것 같다. 쌀농사와 고추 마늘농사, 콩 농사, 감자와 고구마, 무 배추, 기타 푸성귀까지도 기본적인 것들은 모두 해결할 수가 있게 되었다. 내년에는 과일나무를 더 심어 과일도 서너 가지는 직접 수확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사먹기로 하면 참으로 간단한 일이다. 주변에 친 환경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아 다소의 비용만 들이면 편리하게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구태여 직접 해보는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소명의식 같은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 외의 일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종교나 철학도, 정치나 예술도, 문학과 스포츠도 먹고 난 후의 일이다. 사람이 먹고만 사느냐고 하지만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 무슨 고상한 일도, 평화도, 사랑도 다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고 난 뒤의 일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남에게 의지하면서부터 인간은 다툼과 경쟁을 일삼고 남을 속이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먹고 사는 문제를 귀찮고 힘든 일이라고 회피한 나머지 그것을 손쉽게 확보하고 누리고자 하는 욕심으로 이루어지는 무자비한 경쟁과 출혈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는가? 옛 말에 농사가 천하의 으뜸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입으로 하는 환경운동, 생명운동도 다 쓸모없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앞산 그림자가 깊어지고 해는 짧아졌는데 날랜 바람이 몸을 웅크리게 한다. 배추를 갈무리해야 겠다. 올 마지막 일이다. 할일은 많이 줄었지만 그러나 일이 남아서인지 아직 본격적인 겨울 작업은 더디다. 주문한 책만 만지작 거릴 뿐 아직 먹도 갈아보지 못했다. 메주가 긴 겨울동안 잘 숙성되어 깊은 맛을 내듯 내 영혼과 정신도 겨울동안 더 깊어질 수 있도록 게으름 피우지 않아야 겠다.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