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큰 눈이 내리고 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마당에 눈이 소복하고 연못만 제 모양을 오롯이 드러냈다. 부드럽고 깨끗한 흰 융단을 깔아 논 것 같다. 나가고 싶지만 참는다. 차마 그 순백을 밟을 수 없다.
까치발로 마루에 나가는데 참새 한 마리가 나무에 앉았다가 날아간다. 그 뒤로 하늘이 더없이 푸르다. 건너편 고사리 밭에도 눈이 하얗다. 나무마다 눈을 이고 서있고 햇빛이 눈부시다. 이제야 온 겨울인 것처럼 느껴진다. 뒤쪽 밀밭에도 눈이 두툼하게 쌓였다. 내년 밀농사가 잘 되겠다.
아침 일찍 위쪽에 사는 원선생이 눈가래를 들고 눈을 치우고 지나갔다. 그 뒤에는 집사람이 차를 몰고 엉금엉금 따라가고 있었다. 박씨네 부부는 걸어서 내려갔다. 눈이 오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나는 나갈 이유가 전혀 없어 집안에서 열심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눈이 오는 바람에 조금 일찍 일어났던 것이다.
깨끗한 눈을 보다가 어느 늙은 시인의 비틀어진 얼굴과 막된 언사가 생각났다. 오만과 치기가 그대로 얼굴에 묻어나는 듯. 한 시대의 상징으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언제 그가 시다운 시를 발표한 적이 있었던가? 마치 그 시절이 자신만의 것인 양, 시대의 아픔을 혼자서 다 짊어졌던 양 안하무인이지만 오히려 나이 들면 그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마저 팽개친 그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차라리 입을 다물지언정 제 젊음을 팔아먹는 어리석음을 노추에 보이다니...
그 시인의 집 앞에도 눈이 내렸을까? 그 눈을 보는 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그런 망발을 보이도록 만들었을까? 세상의 이치를 말하지만 그들은 늘 어떤 사람이나 특정한 집단을 증오하고 공격하는 소아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가? 비슷한 행태를 보였던 몇몇의 인사들의 행동거지가 닮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일한 형태의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시인의 추악한 모습보다는 그것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세상이 못내 안타까웠다.
바람이 그치고 따뜻한 햇볕에 드러난 눈밭은 참으로 안온하다. 잔솔가지 위에 얹힌 눈들이 가루처럼 날린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맨 몸을 드러내어 안쓰럽지만 땅 속의 식물들은 마치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해 보인다. 숨 죽여 봄을 기다리는 그들의 생명력을 생각해본다. 얼어있는 땅을 견디며 힘을 모으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한 시절, 왜 그렇게 집착하다시피 겨울이면 눈을 기다리고 찾아 나섰던가? 거짓과 허영으로 뒤덮인 세상을 일순 덮어버리고 마는 그 불가사의한 힘.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던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으로만 쳐다볼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흰 눈을 보는 순간 누구도 그것이 드러내는 순수의 시원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한 것들이 주체하지 못할 지경으로 눈에 대한 갈망을 일으켜 마치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처럼 눈을 찾아 나서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쫓기듯 살아가는 이 세상은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야 할 필요나 당위성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한 쪽을 향해 달려가듯 살아가고 있다. 잠시 옆을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누구일까? 우리를 그렇게 내모는 이는? 차이는 어차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친다면 세상은 치열한 투쟁의 싸움판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러한 줄달음질에서 한 걸음 빠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좁다고 돌아다닌들, 이 세상을 사고 팔 정도의 금력과 그 세상을 모두 다스릴 권력을 가진다 한들 그것이 세상을 보는 안목과 지혜를 키워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임을, 혼자만의 독점이 아니라 나누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시기와 미움과 충돌과 싸움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과도하게 많이 가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고 죄악일 수도 있다.
눈을 인 먼 산의 능선들이 곱다. 산짐승들은 이 겨울을 눈 속에서 어찌 지낼까? 아무런 장치도 없는 자연상태에서도 겨울을 잘 견디는 그들을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참 연약한 짐승이구나 생각이 든다. 난방을 개발하고 따뜻하고 안락한 생활을 추구한 나머지 이제는 바깥의 추운 날씨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문명의 대가라는 생각도 든다.
눈이 쌓이니 토끼몰이를 하러 동네사람 몇이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 손에는 또 재수없는 토끼 두어마리가 포획될 것이다. 겨울철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무슨 법적인 것을 가지고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차별적 남획이나 상업적인 포획, 육식을 목적으로하는 대량사육과 도살 등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생명의 존엄성, 그것은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무릇 모든 생명체의 존엄은 똑같은 것이니 인명의 귀중함만을 따로 주장하지는 말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힘을 남용하지 않고 자연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눈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면 늘 히말라야가 떠오른다. 한 십여년 전 부터 한 번 가야지 하며 염원을 하고 있었지만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누구라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어쩐지 미루기만 하다가 아직도 가보지를 못하고 있다. 유니소니언에서 실시하는 겨울 히말라야 트래킹을 신청했다가 취소한 적도 있다. 혼자 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을 줄이야... 내가 희망하는 히말라야 여행은 그곳에 사는 그들이 경외하고 신성시하는 설산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어떤 깨닫음을 얻을 수 있는 곳.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그 언저리에서 침묵으로 며칠 지내다 보면 무언가 얻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방법을 생각하다보니 차일피일 미루다 점점 멀어져 가고만 있다. 가게 될 날이 올른지.
사철가의 겨울 대목에 '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했으니 이대로 나도 늙고 마는 것은 아닐른지. 그러나 마음은 늘 청춘인양 오해하며 살고 있는지라 나이 들어서도 눈을 고대하는 철없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오늘 같은 날은 내심 너무나 흡족하다. 눈이 내린 다음날 햇볕이 따사로운 창 앞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한 잔 마시는 여유는 사실 오래전부터 절치부심(?) 벼르던 희망이었던 것이다.
눈이 내린다고 이 나이에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들뜨고 즐거우니 우스운 일이다. 아마 천성인 모양이다. 그러다가도 집안 일이나 세상일들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더구나 선거 때가 되니 이런저런 생각에 또 마음이 찹찹해진다.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괜한 불편함을 사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세상 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자신을 다스리고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일 테니까. 그저 눈이 내리면 무연히 눈이나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좋을 듯도 하다.
오후가 되니 하늘이 어두어지면서 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이미 12월 초에 이렇게 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올 겨울은 제법 많은 눈이 내릴 것 같다. 내일도 눈 소식이 있다. 걱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가 된다.
소은.
p.s> 예쁜 희빈 조씨가 시집을 간다고 연락이 왔는데 눈 길에 나서기가 무엇하여 포기하였다. 서로 사정을 아는 사람끼리의 혼인인 것 같은데 아무쪼록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