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산골에서 겪은 유쾌한 소동

방산하송 2013. 3. 26. 20:10

다음 글은 최성각 작가와 풀꽃세상이라는 모임을 이끌었던 정상명님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풀꽃평화 연구소의 웹사이트에 실린 글이다.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서로 대화도 하고 의견도 나누는 유익하고 의미있는 사이트다. 그동안 매주 정기적으로 발행하던 환경관련 웹진을 10여년 500호를 끝으로 마감하고,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올리고 서로 공유하는 곳이다. 나는 바람골이라는 아이디로 방문한다.

외고로 발표된 '산골에서 겪은 유쾌한 추억'은 오랫만에 흐믓하고 아름다운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이 아수라 같은 세상 속에서도 한가닥 숨쉴 여유를 선사하는 감동적인 글이다.

 

::: 시냇물에 발 담그고 :::

 

 

이 판에서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산등성이를 넘고 계신데,
노랑나비 한 마리가 지게 위에서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느리고 허술하게 이 한세상 '사는 얘기들'을 나눌 것입니다.

 

이름: 달빛출렁
2013/3/16(토)
조회: 48
산골에서 겪은 유쾌한 소동
남도의 산골 마을을 돌아다니던 때였다. 구불구불 어렵사리 이어지는 소로를 따라 차를 몰아 한참을 달린 끝에 궁벽한 오지에 닿았다. 도시의 소음과 풍문이 엄습 못할 후미진 산촌. 야산의 품에 안긴 마을은 하염없이 낙후했으나 그지없이 포근했다.

나뭇가지로 엮은 사립이 정겨운 어느 집 텃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시골 노인네들에게 말을 걸어 귀를 기울이는 일은 오랫동안 충분히 숙성된 와인을 마시는 일과 닮았다. 노인의 삶에 서린 나름의 빛깔과 향기에 슬쩍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란 여하튼 우리의 선배이며, 그 아래서 쉴만한 그늘이며, 앞서 간 하나의 길이 아니겠는가.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많은 걸 여쭈었다. 언제부터 여기 사셨느냐, 오일장엔 자주 나가시느냐, 건강은 괜찮으시냐, 즐겨 자시는 음식은 뭐냐, 이모저모 시시콜콜히 물었지만 할머니는 선선히 대꾸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생면부지 나그네의 시답잖은 질문에 마치 무슨 횡재라도 한 사람처럼 유쾌한 응답으로 일관했다. 사람의 입이란 친절을 베푸는 데 오직 그 용도가 있다는 양 자상한 언사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와 노닌 뒤 부디 건강하시라 덕담을 하고 돌아서 나오려던 때였다. “워매, 그냥 가실라고라?”

할머니께서 나를 붙드시는 것이었다. 그냥 가는 게 아니라고, 그럴 수는 없다고, 밥을 먹고 가야한다고 팔을 잡아끄는 게 아닌가. 읍내 식당에서 점심을 이미 먹었던 나는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이지 않겠는가. 나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다만 하나의 밥통을 뱃속에 달고 살아가는 사람일 뿐 두 개를 달고 사는 게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찬은 변변치 않지만 한 술이라도 뜨고 가야한다고, 객지에 나오면 고생이니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고 성화셨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을 리가 있겠는가. 먹은 것과 진배없다고, 고맙고 죄송하다고, 나는 거의 하소연을 하며 할머니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 분발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것 같았다. 기어이 밥을 먹여 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목표를 이루고 말겠다는 결연한 태세로 씩씩거리며 내 팔을 한결 다부지게 붙잡고 늘어지셨다.

고요한 산골에서 이 무슨 소동이란 말이냐. 할머니와 나의 실랑이는 거의 육박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급기야 할머니에겐 지원군까지 가세했다. 방에서 낮잠을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바깥의 소란에 잠을 깬 즉시 상황의 부조리함을 간파하고,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한 채 우당탕 툇마루로 뛰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항아리 박살낼 것처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나를 비난했다.

“하이고! 밥 한 술 뜨고 가랑게 시방 워째 그러는 거시여, 엉?”

기골이 장대한 할아버지였다. 자칫 이 괄괄한 양반에게 맞아죽을지도 모를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일 신문에 나의 요상한 죽음이 보도될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유례가 드문 이 괴상한 사건을 두고두고 음미하며 나를 비웃을 가망성이 많다. 그래도 나는 고집을 피웠다. 이런 내가 속이 상해 견딜 수 없다는 양 할머니의 얼굴에 슬픈 표정이 서렸다. 내가 사양한 이유는 이미 배가 터질듯 불러 더 이상 밥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으나 노부부가 나를 붙잡은 이유에 비하면 실상 무가치한 것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다음처럼 기세를 돋워 나를 꺾어버린 게 아닌가.

“워메, 징하게도 고집이 쎄쇼잉. 내 집에 들어온 사람, 밥 안멕여서 보낸 적이 평생 한 번도 없었는디 워째 그런당가?”

결국 나는 밥을 먹었다. 울먹울먹한 심정으로 수저질을 했다. 나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복이 많단 말인가. 야박한 세태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순정하고 질기게 살아남은 시골인심에 감격스러웠다.

그리워라, 할머니가 차려주신 다정한 밥상이여! 아무런 계산이나 속셈이 없는 그 순수한 인정! 그 따뜻한 마음! 평소 별다른 선행을 한 적이 없는 채 그저 쌀벌레로 살아온 나는 부끄러움과 행복감을 같이 느꼈다.

오늘까지 지구의 인간 생태계가 그나마 무사한 것은 오직 그 노부부 덕분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막각: 결국, 이 글을 쓴 달빛출렁님의 센 고집이 그보다 더 센 산골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다행스럽게도 이 노부부 집안의, 지나가는 사람 안 멕이고 그냥 보내지는 않았던, 오랜 전통이 지켜지고야 말았습니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시골 깊은 곳에는 계십니다. 이 나라에 계시고, 네팔 히말라야 산중에도 계시고, 라다크 오지에도 계시고, 어쩌면 방글라데시에도 계십니다. 이분들에게는 스마트폰이니 정보사회니 방송통합이니 아랑곳없습니다. 인간이 왜 인간이냐? 집 앞을 지나가는 다른 인간을 그냥 두지 않기 때문에 인간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인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나와 버렸습니다. -[03/18-10:35:9824]-
막각: 이 산골의 노부부는 피켓 하나 없이, 성명서 한 장도 없이, 누구와도 연대하지 않고, 오로지 그렇게 해오던 근성과 고집 하나로, 나중에는 할아버지까지 가세한 협조로 자본주의에 저항했습니다. 저항한 뒤에 이기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동은 단지 유쾌할 뿐 아니라 위대한 소동이라고 말해도 될 것만 같습니다. -[03/18-10:38:2116]-
왕풀: 자연 속에서 흙과 더불어 살면 사람의 심성도 흙을 닮아가나봅니다. 어떤 씨앗이라도 흙에 떨어지면 거절하지않고 보듬어안고 키우는 넉넉함말입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마는.
밀고당기는 풍경이 눈에 선해서 읽다가 막 웃었어요. 이렇게 유쾌한 글을 보내준 달빛출렁의 건강한 열개의 손가락들, 복 받으소서. 절대 퇴행성관절염에 걸리지 마시고요. -[03/18-12:22:9964]-
달빛출렁: 왕풀님! 손가락 관리는 어떻게 해야 잘하나요? 몸에 달린 형제와도 같은 손가락이지만 그걸 잊고 살기 십상입니다. 숟가락 들어 밥 먹게 하고, 술잔 거머쥐게 하고, 책장 넘기게 하고, 자전거 핸들을 잡게 하고, 상추를 뜯거나 꽃잎을 만지게 하고, 때론 눈물을 닦거나 분하고도 슬픈 연서를 쓰게 하는 고마운 손가락인데, 그걸 까먹고 괄시를 하게 됩니다. 내 몸에 달린 물건에게도 이렇게 무심한즉, 남의 생각이나 남의 선의를 대하는 무심과 무지는 또 얼마나 많을까나, 그런 생각 문득 듭니다. 고마워요, 왕풀님. 이 좋은 3월을 유쾌하게 감미롭게 만끽하소서. -[03/19-11:26:4664]-
달빛출렁: 다정한 나의 벗 성각이여! 얼마 전 홍천강 쪽엘 갔다가 자네 생각 그립게 했다네. 퇴골로 무작정 달릴까, 하다가 지그시 참은 건 참을 만 해서였지. 생각만으로도 해갈이 되더라고. 하하하. 참. 언젠가 자네에게 보냈던 나무이름은 명자나무일세. 명자에게 안부전해주오, 멋진 벗이여. -[03/19-11:28:2324]-
왕풀: 용서하시오, 달빛출렁이여, 그대의 친구에게 준 명자나무는 꽃이름이 하도 즐거워 그대친구를 위협하여 내가 강제로 탈취했다오. 지금 명자나무는 성모님 곁에 고즈녁히 앉아 있다오. 이 일이 맘에 걸리면 그대가 툇골에 오시어 손수 명자나무를 파내어 연구소로 데려가시오. 니 맘대로 하소서. -[03/19-22:45:7304]-
달빛출렁: 아름다운 왕풀님이시여! '명자'를 탈취당한 성각이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제가 이렇게 삿대질을 길길이 해대며 규탄하고 싶은 심사를 지그시 누를 있는 건, 자연과 만물을 친애하시는 왕풀님의 미덕과 기량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자'를 강탈당하는 즐거움을 은근히 음흉하게 누린 성각이의 행운도 가히 독보적인 것이리.왜냐면, 자고로 꽃이란 꽃다운 이에게 가는 것이 마땅함을 모를 리 없음이니. 말하자면 '명자'의 경로엔 터럭만큼의 유감이 낄 수 없는 순리가 작동한 것입니다요.이거이 바로 평화의 전개양상인 것입죠. '명자'와 더불어 한결 오붓한 봄을 노니소서! -[03/20-09:31:4904]-
왕풀: 이렇게 너그럽게 혜량해주시니 감읍할 뿐, 그동안 옛주인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 앉아 꽃도 피울똥말똥, 전전긍긍하던 명자나무는 이제는 안심하고 자두나무집 성모님 뜰이 휘황하도록 붉은 꽃송이들을 피워올릴 것인즉, 명자꽃 피면 그대를 초청하여 술 한잔 출렁출렁 따뤄드리리다. (이실직고하니 이렇게 맘이 편하구나! 히히) -[03/20-13:12:6364]-
막각: 친구에게 선사받았으므로 분명 내 명자나무인데, 그걸 갖고설랑 시방 달빛출렁과 왕풀님이 출렁출렁 잘 놀고 계시니 보기 좋네. 나는 왕풀님에게 그 나무를 빼앗긴(?) 데 대해 굳이 변명을 삼가겠네. 왜나하면, 왕풀님은 염소보다 힘이 센 분인데다, 나는 명자나무를 잘 키우기는커녕 나무이름도 곧바로 까먹는 한심한 수준인지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나무임자는 그 나무를 탐내는 사람의 것이 맞지 않겠는가?...그래서 강탈당하는 즐거움을 조금 즐긴 셈인데, 친구는 그것을 재빨리 알아채고야 마는군.
그분이 명자나무에게 자주 말을 걸고, 그분 뒷뜰에서 잘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 마시게나.
하지만 조금은 미안하네. 강탈자로부터 나무를 지키지 못해서. -[03/20-14:50:6809]-
바람골: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흐믓한 마음을 느껴본지도 오래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달빛출렁님이나 산골 할머니나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잠시나마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만끽하게 해 주셨으니까요. -[03/20-19:59:7264]-
어구: < 산촌의 황홀> 이던가요, 저는 이 책을 소개도 하고 제가 즐겁게 읽기도 했는데 그 저자 박인식님이 달빛출렁님이신줄 이제야 알았어요. 이 글을 보고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맞네요. ㅎㅎ 역시 사람의 향기, 글의 향기는 거짓일 수 없네요. 달빛출렁님의 따스한 글에 마음도 한껏 출렁입니다.^^ -[03/21-16:35:4961

달빛출렁: 꽃다운 왕풀님이시여! 4월의 명자나무 붉은 꽃향 아래서 한 잔 나눌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명자꽃의 은은한 향도 좋지만, 가을에 맺히는 그 달콤한 열매는 작은 사과처럼 생겼으며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한답니다. 송재학 시인의 “명자나무 우체국”이라는 시도 맛납니다. 바람골님, 반갑습니다. 물신이 허공을 뒤덮고 떠도는 이 발칙한 세태에 세상의 일각에 여전히 남은 순수한 인정이란 실로 보전되고 간수되고 복원되어야 할 긴박한 사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구님! 저의 졸저를 읽으셨나요? 책을 내고나면 늘 남몰래 부끄럽더이다. 참, 저의 이름은 박인식이 아니라 박원식입니다.ㅎㅎ -[03/21-23:09:7241]-


어구: 앗, 박원식 선생님. ㅎㅎㅎ, <산촌여행의 황홀>(창해). 제대로 정정합니다. -[03/24-19:41: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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