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최성각 작가와 풀꽃세상이라는 모임을 이끌었던 정상명님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풀꽃평화 연구소의 웹사이트에 실린 글이다.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서로 대화도 하고 의견도 나누는 유익하고 의미있는 사이트다. 그동안 매주 정기적으로 발행하던 환경관련 웹진을 10여년 500호를 끝으로 마감하고,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올리고 서로 공유하는 곳이다. 나는 바람골이라는 아이디로 방문한다.
외고로 발표된 '산골에서 겪은 유쾌한 추억'은 오랫만에 흐믓하고 아름다운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이 아수라 같은 세상 속에서도 한가닥 숨쉴 여유를 선사하는 감동적인 글이다.
::: 시냇물에 발 담그고 :::
이 판에서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산등성이를 넘고 계신데,
노랑나비 한 마리가 지게 위에서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느리고 허술하게 이 한세상 '사는 얘기들'을 나눌 것입니다.
이름: 달빛출렁![]() ![]() | |
![]() 나뭇가지로 엮은 사립이 정겨운 어느 집 텃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시골 노인네들에게 말을 걸어 귀를 기울이는 일은 오랫동안 충분히 숙성된 와인을 마시는 일과 닮았다. 노인의 삶에 서린 나름의 빛깔과 향기에 슬쩍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란 여하튼 우리의 선배이며, 그 아래서 쉴만한 그늘이며, 앞서 간 하나의 길이 아니겠는가.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많은 걸 여쭈었다. 언제부터 여기 사셨느냐, 오일장엔 자주 나가시느냐, 건강은 괜찮으시냐, 즐겨 자시는 음식은 뭐냐, 이모저모 시시콜콜히 물었지만 할머니는 선선히 대꾸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생면부지 나그네의 시답잖은 질문에 마치 무슨 횡재라도 한 사람처럼 유쾌한 응답으로 일관했다. 사람의 입이란 친절을 베푸는 데 오직 그 용도가 있다는 양 자상한 언사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와 노닌 뒤 부디 건강하시라 덕담을 하고 돌아서 나오려던 때였다. “워매, 그냥 가실라고라?” 할머니께서 나를 붙드시는 것이었다. 그냥 가는 게 아니라고, 그럴 수는 없다고, 밥을 먹고 가야한다고 팔을 잡아끄는 게 아닌가. 읍내 식당에서 점심을 이미 먹었던 나는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이지 않겠는가. 나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다만 하나의 밥통을 뱃속에 달고 살아가는 사람일 뿐 두 개를 달고 사는 게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찬은 변변치 않지만 한 술이라도 뜨고 가야한다고, 객지에 나오면 고생이니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고 성화셨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을 리가 있겠는가. 먹은 것과 진배없다고, 고맙고 죄송하다고, 나는 거의 하소연을 하며 할머니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 분발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것 같았다. 기어이 밥을 먹여 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목표를 이루고 말겠다는 결연한 태세로 씩씩거리며 내 팔을 한결 다부지게 붙잡고 늘어지셨다. 고요한 산골에서 이 무슨 소동이란 말이냐. 할머니와 나의 실랑이는 거의 육박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급기야 할머니에겐 지원군까지 가세했다. 방에서 낮잠을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바깥의 소란에 잠을 깬 즉시 상황의 부조리함을 간파하고,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한 채 우당탕 툇마루로 뛰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항아리 박살낼 것처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나를 비난했다. “하이고! 밥 한 술 뜨고 가랑게 시방 워째 그러는 거시여, 엉?” 기골이 장대한 할아버지였다. 자칫 이 괄괄한 양반에게 맞아죽을지도 모를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일 신문에 나의 요상한 죽음이 보도될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유례가 드문 이 괴상한 사건을 두고두고 음미하며 나를 비웃을 가망성이 많다. 그래도 나는 고집을 피웠다. 이런 내가 속이 상해 견딜 수 없다는 양 할머니의 얼굴에 슬픈 표정이 서렸다. 내가 사양한 이유는 이미 배가 터질듯 불러 더 이상 밥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으나 노부부가 나를 붙잡은 이유에 비하면 실상 무가치한 것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다음처럼 기세를 돋워 나를 꺾어버린 게 아닌가. “워메, 징하게도 고집이 쎄쇼잉. 내 집에 들어온 사람, 밥 안멕여서 보낸 적이 평생 한 번도 없었는디 워째 그런당가?” 결국 나는 밥을 먹었다. 울먹울먹한 심정으로 수저질을 했다. 나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복이 많단 말인가. 야박한 세태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순정하고 질기게 살아남은 시골인심에 감격스러웠다. 그리워라, 할머니가 차려주신 다정한 밥상이여! 아무런 계산이나 속셈이 없는 그 순수한 인정! 그 따뜻한 마음! 평소 별다른 선행을 한 적이 없는 채 그저 쌀벌레로 살아온 나는 부끄러움과 행복감을 같이 느꼈다. 오늘까지 지구의 인간 생태계가 그나마 무사한 것은 오직 그 노부부 덕분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 아직도 이런 분들이 시골 깊은 곳에는 계십니다. 이 나라에 계시고, 네팔 히말라야 산중에도 계시고, 라다크 오지에도 계시고, 어쩌면 방글라데시에도 계십니다. 이분들에게는 스마트폰이니 정보사회니 방송통합이니 아랑곳없습니다. 인간이 왜 인간이냐? 집 앞을 지나가는 다른 인간을 그냥 두지 않기 때문에 인간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인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나와 버렸습니다. -[03/18-10:35:9824]- ![]() 그래서 이 소동은 단지 유쾌할 뿐 아니라 위대한 소동이라고 말해도 될 것만 같습니다. -[03/18-10:38:2116]- ![]() 밀고당기는 풍경이 눈에 선해서 읽다가 막 웃었어요. 이렇게 유쾌한 글을 보내준 달빛출렁의 건강한 열개의 손가락들, 복 받으소서. 절대 퇴행성관절염에 걸리지 마시고요. -[03/18-12:22:9964]- ![]() ![]() ![]() ![]() ![]() ![]() 그분이 명자나무에게 자주 말을 걸고, 그분 뒷뜰에서 잘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 마시게나. 하지만 조금은 미안하네. 강탈자로부터 나무를 지키지 못해서. -[03/20-14:50:68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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