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교육희망 편집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호에 실을 원고 부탁이었다. 전교조의 법외노조와 관련해서 써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이다 수락을 했다. 이미 블로그에 그 사태에 대한 나의 생각은 대강 밝혀 놓았다.
그러나 이 일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매체나 뉴스에 실린 글들을 읽어보면 이번 기회에 전교조가 초심을 찾아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난 말이다. 우리의 교육현실과 실태를 깊히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제대로 전교조를 알고 하는 말도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상처받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 그들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글을 정리해 보낸다.
전교조의 초심은 어디 갔는가?
윤장호(http://blog.daum.net/yjhkkk)
초심으로 돌아가라.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사회의 언론이나 지식인, 또는 활동가들이 전교조에게 충고한다는 핑계로 툭하면 던지는 말이다. 전교조의 초심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전교조는 그 때의 초심을 잃고 전혀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가? 노동조합이지만 노동운동과 동시에 교육운동이라는 사회적 활동을 중요한 축으로 삼고 출발한 전교조에게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는 편견이나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소위 진보적이거나 우호적인 학부모 단체까지도 심심찮게 그런 말을 한다. 그들은 전교조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내키는 대로 재단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전교조의 활동을 학교 내에서만 국한해서 하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교육제도와 환경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그런 것에는 눈 돌리지 말고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라는, 촌지 같은 것에는 관심두지 말고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최선을 다하라는 그런 말이다. 그런데, 잘못된 제도나 불합리한 교육정책, 부패와 부정, 부도덕한 관리자나 자기 아이만을 생각하는 학부모의 요구 등으로 인해 교육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못된 교육정책이나 교육행정이 모두 학교 안에서 고쳐질 수 있는가? 대한민국의 교육 관리자들이 그럴 의지나 능력을 가지고 있기나 한가? 최소한 지역 교육청과 교육부, 크게는 정부의 의지와 정책에 의해서 결정되는 문제를 학교 안에서 어떻게 해결하라는 말인가? 설혹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교사 따위의 신분으로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역대 보수정부나 교육부는 그들의 잘못이나 불합리한 교육정책을 은폐하기 위해 소위 보수언론들과 합작하여 교묘히 전교조를 공격하고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학부모들은 앞뒤 없이 부화뇌동하여 교육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엉뚱한 전교조를 희생양으로 삼아 분풀이를 하고 해소하고자 했다. 참으로 비겁한 행동이다. 그리고 그런 거짓 여론을 빌미로 정부는 다시 전교조를 공격하고 음해하는 짓을 반복해 왔다. 법외노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결코 법적인 문제도 교육적인 문제도 아니다. 오로지 그들의 반역사적 의식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폭력인 동시에 전교조에 불만이 있는 보수 세력의 결집을 유도하기 위한 이중의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련의 정치적 일탈과 공약에 대한 속임수를 통해 이 정권의 속성과 속셈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들이 시민을 보호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한다는 당위를 버리고 힘과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체제를 옹호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이미 교육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교과서 문제다. 도대체 독립운동을 경시하고 친일을 옹호하며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관이 어떻게 자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민족을 외면하고 외세를 찬양하는 보수도 있는가? 그런 역사관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사학의 부패와 비리도 대부분 친일과 독재세력에 끈이 닿아있다. 그렇게 취한 부와 권력을 그들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학교도 시장주의 논리로 접근하고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그것에 대해 비판적인 전교조는 큰 장애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핑계로든 제거하고 싶은 공적이었을 것이다.
학교사회에서 전교조는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에 맞서는 최소한의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학교사회는 교육적으로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지 오래다. 오로지 치열한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달하는 학부모와 그 약점을 이용한 관리자들, 그리고 교육을 정치적 목적과 체제유지를 위한 교두보로 생각하는 보수 기득권층의 손아귀에 잡혀 이미 파행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남을 이기기 위한 힘의 논리만이 유일하게 팽배해 있다. 학원 안가는 아이 때문에 자기 아이가 학원가기 싫어한다고 그 아이를 전학 보내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물론 의식이 있고 깨어있는 학부모도 있겠지만 교사 중에는 오히려 그런 의식을 가진 학부모를 경원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런 지경이라면 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런 학교현장의 불합리와 비교육적 현실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전교조의 초심은 바로 이런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다. 혹독했던 초창기의 탄압 속에서 피 흘려 가며 지켜온 것도 오로지 참교육을 구현하고자 하는 그 초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교조의 활동도 역시 그 초심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왜 시국선언을 하고 왜 상경집회를 열고 사학을 고발하고 일제고사를 거부했으며 NEIS를 반대했던가? 모두 학교를 지키고 학생을 지키고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요구이자 투쟁이지 않았던가? 물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껏 전교조가 무슨 정치적 목적을 노렸으며 언제 자신들만의 이익을 요구했던가? 상황파악도 못하는 무지한 자이거나 교육의 본질도 모르는 문외한이거나 교사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오만한 자들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전교조에게 돌을 던지고 초심 운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두운 시대, 고난의 시련은 다시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저들이 아무리 법외노조를 통보하고 전교조를 핍박한다고 해도 깨어있는 정신까지는 어쩌지 못할 것이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인다고 했으니 어떤 어려움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누가 전교조의 초심은 어디 갔느냐고 조롱한다 해도 “여기 있다!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해 지금 싸우고 있는 중이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리산에서.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