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산정묘지

방산하송 2013. 10. 25. 10:31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 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뭍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 주리.

이하 생략...

 

-山頂墓地 1(조정권) 중에서

 

 

 

 

상강이다. 서리까지는 아니어도 올들어 가장 쌀쌀한 날씨다. 그예 정부는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하였다고 한다.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법률에도 없는 일 개 시행령을 근거로 한 횡포다. 헌법을 무시하는 만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오로지 상대편에 대해서만 법 운운하고 정작 자신들의 무법과 탈법은 전혀 모르쇠하는 후안무치한 자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차피 그들에게 정의롭고 공정한 법질서를 요구한다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친일을 대세라고 면죄부 주기에 골몰하고, 무력으로 일으킨 정권 탈취를 구국이라고 변명하며,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도 정의로운 사회를 외친자들이니 무엇을 더 기대하랴?

 

그러나 깨어있는 정신조차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조정권 시인이 말했듯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 했으니 다시 시련을 맞게된 전교조 친구들에게 언젠가 조선생에게도 당부했던 것처럼 이번 일을 걸림돌로 여겨지 말고 디딤돌로 삼아 더 발전하고 굳건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하며 조정권의 산정묘지를 격려의 의미로 부친다.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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