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의 가정방문이 있었다. 전날 저녁에 나는 판공성사를 볼 준비를 했다. 한 달 전 성사를 보기는 했지만 늘 실수하고 후회하고 또 반복하는 연약한 인간인지라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 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앉아 성사 볼 내용을 정리하였다. 여러 번 고쳐 썼다. 고백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나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도무지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모든 것이 미흡하다고 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을 다시 붓으로 옮겼다. 아침에 일어나 목욕을 했다.
신부님과 수녀님, 구역장과 안내자들이 집으로 들어와 같이 기도를 드렸다. 신부님께서 가정을 위한 기도와 축복을 내려주시고 각 방마다 성수를 뿌리고 축원을 해주셨다. 성사를 보겠느냐고 했다. 안방으로 들어가 꿇어앉았다. 준비한 내용을 들고 그대로 고백하였다.
하느님과 신부님께 저의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성사 본 지 한 달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소한 핑계로 주일미사에 여러 번 빠졌으며 평소에도 기도를 소홀히 하고 지켜야 할 의무도 자주 빠뜨렸습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하고서도 생각과 입으로만 주님을 찾고 주님의 길을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제 가족과 형제와 이웃들, 같이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보살피고 베풀고 헌신하는 자세를 잊고 살았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관심하였으며 자연의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그들을 돌보는데 소홀히 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겸손한 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물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안락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편리함을 탐하고 편안함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지고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으며 제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릴 때도 많았습니다.
아직도 저 자신을 죽여서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저를 드러내고 앞세우는데 욕심을 피우기도 합니다.
저는 너무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주님을 잊고 사는 때가 많았으니 얼마나 더 많은 죄를 지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주님,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성자 프란치스코를 닮아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미처 다 읽지 못할 정도로 마지막엔 목이 잠겼다. 이 외에도 알지 못하는 모든 죄 다 사하여 주십시오. 신부님이 덧붙였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중에 우리가 사는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것, 그 한 번의 인생을 주님의 길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보속으로 주모송을 주었다. 신부님이 가신 뒤 기도를 바치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생각 끝에 이 성사를 블로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부끄러운 것을 올리는 것은 그대로 부끄럽기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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