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弔詩

방산하송 2015. 1. 20. 19:40

 

오늘도 앞산은 우뚝하

하늘은 저리 청청한데

그대 어디로 가시는가?

늙은 노모와 처자마저 버리고

어찌 그리 황망히 가시는가?

형제처럼 지내던 동무와 아우들도 못본 채

그렇게 총총히 떠나가다니

그대는 참 무정한 사람일세

 

산내의 대들보였던 그대가

우리 마을의 기둥 같았던 그대가

한 순간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헛말인 듯 믿어지지가 않네

세상에는 죽어질 인간들이 차고 넘치는데

할 일이 태산같은 그대가 먼저 가다니

하늘도 참, 이런 무심한 일이 없네

 

그대는 참으로 많은 인정과 덕을 남겼네

성실한 가장이요, 동네의 모범이었으며

언제나 믿음직 했던 든든한 친구였네

그대가 만든 많은 인연과 사랑과 노고

그 발자국을 우리는 잊지 않겠네

다만 그대가 가고 없다면

우리에겐 보람이고 추억이겠지만

그대에겐 무슨 기쁨이며 희망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운명은 재천이니

기어이 가시는 길이라면

그대 걸음마다 향기로운 바람

꽃비가 내리길 빌겠네

술과 노래가 넘쳐나길 빌겠네

그대가 남긴 짐은 우리가 모두 나누어 질 터이니

이승에 남은 미련 훌훌 털어버리고

부디 평안히 잘 가시게

저승에서는 영영 행복하시게

 

을미 일월 이십일. 윤장호.

 

 

아랫 마을 임재경씨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믿을 수가 없어 두번 세번 물어 보았다. 산내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놀이마당 공연을 마치고 난 뒤 기분이 좋아 술을 한 잔하고 다시 혼자서 계동치킨 집에 들리러 가다 뒷계단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아침에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무언가 큰 버팀목이 허물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길로 남원으로 가 보았다. 산내의 귀농한 친구들은 거진 모여들었다. 안사람이 대성통곡을 하고 노모가 정신없이 울부짖었다. 참으로 황망한 일이었다. 그 장군 같던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뜰 줄이야.

 

나이 차가 있고 성향이 달라 가까이 어울리지는 않았으나 늘 든든하고 믿음이 가는 친구였다. 솜씨가 있고 일도 잘하여 노모를 모시고 성공적으로 정착을 한 사람이었다. 강직하고 의식이 뚜렸했으며 특히 귀농한 친구들과는 형제처럼 잘 아우르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봉사활동도 부지런히 할 뿐만 아니라 늘 여기저기 불려다니고 또 잘 어울렸다. 겉 모습은 우락부락 하였으나 예의 바르고 붙임성도 있으며 일을 할 때는 강단이 있어 많은 사람의 믿음을 받았었다. 우리마을 청년회장을 수년간이나 맡았으며 올 해는 작은 학교 이사장 일도 본다고 했다. 지난 달 그 집 모친네 솥에 메주 삶으려 갔을 때 같이 점심을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옛날에 일하던 직장에서 요청이 와 곧 멕시코에 얼마간 일을 도와주러 간다고 했는데 귀국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번 돈은 작은 학교 장학금으로 내놓겠다고 했다던가?

 

오늘 아침 발인인데 장례식장에 같다가 막 화장장으로 출발하는 것만 보고 왔다. 화장을 한 뒤 마을 뒷쪽 밭에다 평장을 하겠다고 했다. 매장을 하고 제를 지내려면 축문이라도 한 장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다가, 조시를 한 편 지었다. 붓으로 옮겨 적은 뒤 곧 도착한다고 하여 급히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골함을 땅에 묻은 뒤 봉분은 만들지 않고 그 위에 자그마한 표지석만 올려놓았다. 제를 올리고 난 뒤 조시를 읊었다. 제문은 나중에 태우라고 했다. 누군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평소에 얼마나 두터운 신망을 얻었는지 실감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하였다. 아마 귀농한 사람 중에 이렇게 죽은 사람은 그동안 처음인 모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 어떤 충격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나 역시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고 아직도 실감이 가지 않는다. 하물며 나이 많은 재경씨 모친이 감당할 상심은 얼마나 클 것인가? 영임씨와 자식들이야 젊으니 그적저넉 살아간다지만 모친이 받은 충격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참척(慘慽)! 부모 앞서 세상을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불효한 일인가?

 

재경씨의 명복을 빌며.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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