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너와 나

방산하송 2015. 3. 8. 15:54

겨울 끝에 오는 봄은 사람의 마음도 부풀게 하는가 보다.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나무 끝에서 새순이 피어나듯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솟아나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여기저기 봄 농사를 준비하는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과연 봄이다. 언제 또 날씨가 변덕을 부릴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공소에 새 신부님이 부임을 했는데 수녀님들도 모두 바꿨다. 시골이어선지 더 자주 바뀌는 것 같다. 여기 들어 온지 몇 년 사이에 벌써 세 번째다. 이번에 온 신부님은 어쩐지 친근감이 갔다. 사람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는 서로 끌리는 모양이다. 지난주 면담을 신청했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미루다가 어제 사제관으로 방문해 차를 한 잔 얻어 마시고 왔다. 살림살이나 거실에 놓인 물건들이 나의 취향과 비슷해 보였다. 나이는 많지 않았지만 바티칸에 두 번이나 유학을 가 줄곧 학업에만 매진을 했던 모양이었다. 이런 저런 신학적인 해석, 신앙생활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투철하지 못한 나의 신앙심과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신부나 수녀님들도 마찬가지로 고민하고 흔들리면서 생활한다는 것과, 가족이나 이웃 간에 생기는 불협화음, 사회적 정의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법규나 기준을 따라야겠지만 무슨 일이건 최후의 보루는 양심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이 귀에 남았다. 내친 김에 성사를 보고 수요일 저녁 십자가의 길에 참여하라는 보속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제1독서를 읽었는데 십계명이었다. 강론을 통해 신부님은 그것을 나(하느님)와, 너(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정리를 했다. 그 관계 맺음이란 계명을 통한 구속이 아니라 죄와 거짓으로부터의 자유, 무지와 오해로부터의 탈피, 어둠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요지였는데 지금까지 들었던 해석 중에 가장 명쾌하고 마음에 들었다. 아마 우리의 삶이란 늘 거짓과 죄의 유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불투명함과 불안함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자유로움을 얻게 해주는 것이 신앙이며, 그러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또한 신의 섭리고 희망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도 가족이든 공동체든 그 구성원들의 관계도 곧 너와 나의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간의 관계가 존재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아니 그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이라도 충실히 보장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개인 간의 이익이란 늘 부딪히기 쉽다. 개인과 사회적 이익도 상충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나 상대의 기본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거나 생존에 심대한 위협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고 윤리가 아니겠는가? 나의 행복과 이익이 타인의 고통이나 손해를 담보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부당하고 부정한 것이며 부도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누군가로부터 아무 잘못도 없이 불이익을 당한다든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든지, 폭력에 노출되고 기본적인 인권이 짓밟힌다든지, 경제적 빈곤으로 세상에서 낙오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무너졌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우리사회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물질이 정신에 앞서고, 거짓이 진실을 이기고, 속됨이 성스러움을 가리는, 폭력이 자유로운 영혼을 억압하며 멸시하는 세상은 곧 지옥이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프란치스코 교황도 경제적 착취에 의한 가난과 빈곤의 문제,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개발과 파괴는 새로운 독재, 곧 죄악이라는 지적을 했겠는가? 순자가 인간이 가지는 악의 본성에 대해 주목한 것을 이해할 만도 하다.

 

희망은 살아 있는가? 상식이 통하고 선과 진실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 오게 될 것인가? 아니 오히려 더 그악스러워지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실망스러워 과연 이 땅에도 축복의 시간이 올 것인가? 대단히 회의적이 되고 만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라. 사람과 사람이 사는 곳이라 할 수 없을만큼 무자비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언제쯤이나 증오와 시기와 탐욕이 사라지고 정의롭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나?

 

운이와 깜순이도 이제 곧 잘 어울려 지낸다. 오늘 낮에는 날이 푸근하여 잠시 풀어줬더니 밖으로 뛰쳐나가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그동안 묶여있어 답답했던지 뒤쪽 밭과 산과 논둑을 미친 듯이 몇 바퀴 돌더니 그래도 걱정과는 달리 곧 집으로 따라 들어왔다.

 

두 녀석 다 서로 생경한 처지에서 느닷없이 만났지만 같은 집에서 같이 먹고 같이 자며 잘 지내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다. 개들도 저리 잘 지내는데, 먹이와 잠자리만 있으면 서로 다툴 일이 없는데 하물며 인간들이. 모두 과한 욕심으로부터 발생하는 일일 것이다. 나부터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관계맺음이 서툰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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