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세월호의 미수습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 무엇보다 신 정부의 출현은 그동안의 죄책감과 불안감 그리고 분노와 좌절로 짓눌려왔던 마음을 상당부분 풀어주었다. 지난 정부의 잘잘못을 따져 무엇하겠는가? 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던가? 지금도 못 헤어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몫일 뿐 이 거대한 흐름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과연 희망이 있는가? 무수히 반문하고 다시 실망하기를 반복해 왔다. 체념하다시피 지냈지만 문득 작년 겨울 거대한 촛불 속에서 한가닥 희망을 보았다. 그것이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하고 폭력적인 권력에는 저항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자산으로 갖게 되었으니 변화라면 큰 변화일 것이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한달여가 되었다. 많은 변화의 싹이 보이고 잘못된 것들이 고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국가부도 이후 민주정부 10여년 동안 적페세력들이 보여준 끈질긴 저항과 버티기, 그리고 이어진 보수정권 동안 무너지고 더럽혀진 민주주의는 얼마나 형훼화되었던가? 이번에는 앞선 시기의 실패를 경험삼아 확실한 개혁으로 국가의 틀과 기초를 단단히 다져놔야 할 것이다.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벼랑 끝에 내몰렸다. 정치가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무너져 갔다. 정의가 무너지고 사회의 밑바닥이 흔들리고 국가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나는 볼품없는 시골살이지만 나만의 즐거움과 여유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감히 자연을 읊고 노래한다는 것이 무례하고 염치없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죄책감 같은 것이었다. 사실 작년 겨울부터는 집권세력의 국정농단과 후안무치함에 질려 내 입에서조차 상스런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감히 세월호의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팔목의 띠는 벗을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면목이 서고 앞 날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시작하자. 책을 손에 잡을 수 없었으니 마음이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도무지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지난 겨울의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마음의 동요와 불안감도 이제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다시 원상으로 돌리고 싶다. 마음에 무성해진 잡초를 거두어내고 다시 밭을 일구어보자.
세월이 순탄치 않아서인지 올해는 농사도 흉작이 많다. 워낙에 가물어 물이 돌지 않으니 마늘이고 감자고 간에 알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양파는 겨울에 모종이 얼어 죽어 양이 많이 줄었다. 고추는 거의 실농에 가깝다. 때 이른 더위와 가뭄에 고추모가 도무지 생기를 찾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되는만큼 해야겠지만 해마다 해걸이하듯 되는 일 안되는 것 번갈아가며 애를 먹인다. 돌아가며 잘되는 것으로 위로를 해야할지 반 농사꾼은 언제나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