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방산하송 2011. 2. 13. 20:09

가까운 인척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다는 기차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기차 속에는 물론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뿐만아니라 서울이 가까워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절반 가까이가 모여사는 서울과 인근 주변에 내가 연락할 만한 친구 하나가 없구나! 라는 것.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조금은 초라해지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형제간이나 처남도 있고 몇몇의 인척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류의 관계가 아닌 순수하게 서로 안부를 나누고 반갑게 밥 한끼,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나 지인 등 그런 관계의 알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고 지금껏 울산에서만 생활을 해왔으니 서울에 있는 사람과는 어떤 활동이나 연고로 알게될 기회가 거의 없었고(나는 서울을 중앙으로 나머지를 지방으로 이분하는 용어의 사용에 지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또 하나는 나의 능력이나 가진 것이 부족해서 소위 요즘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과의 인적교류를 가지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대단한 능력도 아니고 또 지금껏 그런 것들을 마음에 두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진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대한민국의 내노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인 곳이 서울이다. 우선 정치적인 중심지이고 경제적인 중심지이다. 또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이라는 곳이 그렇게 탐탁치만은 않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일에 관계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서울에 모여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일류 대학들도  모두 서울에 있고 유명짜한 교수들도 모두 서울에 있거나 서울로 진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이들이 아니다. 정치인, 관료, 금융인, 학자, 예술가, 연예인 등 숫하게 유명한 사람들이 많지만 나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고 기실 큰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찻시간에 맞춰 서두르며 들고 나온 최근에 읽고 있던 최성각이라는 생태주의에 관심이 많은 한 작가가 쓴 가벼운, 그러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한권의 책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라는 제목의 그것은 책에 대한 안내 즉 자신이 읽었던 책의 서평을 정리한 것이지만 단순한 서평만이라고만 할 수 없는, 책을 통해 자기의 철학과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단단히 묶어 잘 전달하고 있는 제법 괜찮은 책이었다. 그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와 동갑내기인 그 작가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적 여운이 마침 그런 심리적 허전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금연못각이라는 재미있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 작가는 이미 몇 편의 글을 통해 그 이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수 년 전 오십대에 든 사람들이 모여 자기들의 이야기와 결심을 작은 글로 엮어 책을 냈는데 그 때 그의 글을 통해 그가 나와 동년배라는 것,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의 간단한 이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지향하는바가 비슷하다는 생각에 상당히 호감이 가고 친근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의 글은 이내 다시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접하거나 주목하는 분야에서 계속 활동하거나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신문의 지면에서나 녹색평론지 등에서도 그의 글을 여러번 접하게 되었고 그 때마다 재미있게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 글을 읽었었다. 그는 녹색평론의 편집에도 관계를 하고 있으며 매년 나무나 길 등 주변의 자연을 대상으로 풀꽃상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풀꽃세상이라는 환경모임과도 관계를 가진 사람이었다.

 

기차안에서 미처 읽지 못한 부분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내내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의 책 속에는 단순한 책소개를 넘어 그의 독서편력과 더불어 살아온 이력, 그리고 생태주의적 생각과  환경운동에 대한 그의 소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상당히 자세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진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소개한 대부분의 책은 이미 내가 읽었거나 알고 있는 책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책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고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바나 생각이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는 것은 나 역시 비슷한 생각과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호! 통탄스럽게도 그러나 난 서울에서 귀가하자마자 인터넷 서점을 통해 또 책을 몇 권 주문하고 말았다. 책 욕심은 많아 그의 독서평을 읽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 몇 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강원도 골짜기에 집을 마련하고 서울의 본가에는 정기적으로 다녀가는 형태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운영하는 풀꽃평화 연구소라 곳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이력처럼 주로 글과 독서를 통한 활동이 주인 것 같았다. 그의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책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독서잡설이라는 코너에 실려 있었다. 어쨌든 그의 글을 읽고 난 뒤 나의 일방적인 희망이기는 하지만 그와 벗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맹렬하게 드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겐가 이렇게 강한 동지의식을 느끼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이런 식의 희망을 가진 적이 여러번 있다. 언젠가는 박남준 시인을 한번 만나봐야지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고, 도종환 시인이나 판화가 김철수씨 등은 꼭 한번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차라도 한잔 마시며 개인적인 인사를 트고 싶기도 했다. 도법스님이나 수경스님도 한번 뵙고 싶었다. 모두 동년배거나 엇비슷한 나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슷한 성향의 동질성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술을 사랑하며 사회적 현상에 관심이 있고 가슴이 뜨거운, 세상의 어둠에 가슴 아파할 줄 아는,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마음이 끌린다. 그런데 이분들은 이미 세상에 널리 이름이 난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가진것 없는 나로서는 방문하고자 하는 어줍짢은 핑게거리도 없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이미 우리가 지내온 많은 세월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것들을 어느정도 되새김질 할만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나 일로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맺음이 곧 우리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관계가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중요한 의미를 주기도 한다. 그러니 그것이 어찌 단순한 일이며 예사의 일이겠는가? 최성각이 책에서 소개한 내용들도 그 밑바탕에는 이러한 관계맺음에 대한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권력과 시민과의 관계,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관계, 서구인과 비서구인과의 관계, 이주민과 원주민과의 관계, 그것을 넘어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 인간과 환경 및 자연과의 관계 등...  결국 모든 것은 이러한 관계맺음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특히 인간과 자연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맺음에 대해 더 중요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환경과 생물계는 스스로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자연적으로 형성되어있는 이러한 생태 시스템을 인간이 과도하게 간섭함으로써 발생하게 된 문제점에 대해 그는 특히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말마따나 고시보다 어려운 신춘문예를 두 번이나 통과한 사람이지만 대중에게는 크게 인식되어 있는 작가는 아닌듯 하다. 소설가는 소설로써 이야기 해야겠지만 그러나 나는 최성각과 같은 사고와 행동과 실천력을 보여주는 작가도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지식인으로써의 역할이란 것이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자기의 영역에서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언제라도 보기가 좋다. 그의 건강한 생각과 재기 넘치는 글을 앞으로도 자주 접하게 되기를 희망하며 기회가 닿는다면 언제라도 한번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세상에는 숨은 인재들이 무수히 많다. 내가 칩거하고자 하는 자리산 자락에도 수많은 고수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애초에 부러 사람을 만나고자 애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스스로 덕이 있고 인품을 갖춘다면 알게 모르게 어떤 인연이 서로를 가깝게 해 줄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중에서도 훌륭하고 본받을 만한 친구들이 제법 많다.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유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서울이라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중심지에 입성을 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만나고 싶은 특별한 인연이나 관계를 가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나의 보잘 것 없음을 말하는 것 같아 다소 섭섭한 소회가 들었던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생각이 수양이 덜된 사람의 전형적 열등감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2010. 2. 13. 송하산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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