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면 시골에서는 감자를 심을 때다. 이사를 가면 가장 먼저 해야 할 농사가 감자였는데 감자 심을 때가 되어도 집이 마무리가 되지 않아 감자 심을 시기를 넘길 판이 되었다. 공사를 지연하는 장 사장이 은근히 불만스러웠지만 재촉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아 참고 있었는데, 농사 준비를 하고 나무를 옮겨 심을 때가 되어도 집이 완공되지 않으니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아직 사람이 본격적인 기거를 할 수가 없으니 제대로 일을 시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둘러 마무리를 해 달라고 푸념 겸 부탁을 하고 늦었지만 감자를 심을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이미 감자를 심은 다른 집에 비해 대략 열흘 정도가 늦었지만 늦은대로 심어보기로 한 것이다. 일단 밭에 거름을 주고 삽과 괭이로 고랑을 판 뒤 흙을 올려 두둑을 만들어 놓았다. 처음 일이라 힘이 들었다. 그런데 씨감자 구할 일이 난감하였다. 알아보니 씨감자는 이미 전 해 농협에 주문을 해 놔야 하는 물건이었다. 시장에 나가 사는 것도 제대로 된 씨감자를 구하기가 쉽지않고 그것도 때가 늦어 물건이 나와 있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봐도 뽀족한 수가 없어 산청의 김선생에게 함양시장으로 동행해 줄것을 부탁하였다. 빈번한 부탁으로 미안하기도 하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김선생의 안내로 씨감자와 멀칭할 비닐을 구해 산내로 돌아왔다.
오후내 혼자서 감자 씨를 만들고 두둑에 비닐을 덮은 뒤 감자를 심었다. 세 고랑이다. 그런데 멀칭을 하다보니 바람이 불고 약간의 비탈이어서 비닐을 덮기가 꽤나 만만치가 않았다. 혼자서 끙끙대며 비닐을 덮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사람만 더 있었으면... 더도 말고 한사람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자를 심는동안 내내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더욱이 부부간의 인연과 역할과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들다. 이런 간단한 일도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데 하물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야. 여기서 한 사람이란 결코 산술적인 한 사람이 아니다. 단순히 두배의 능력과 힘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을 지탱해 주는, 수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만들어 주는, 살아가는 보람과 의미를 만들어 주는, 그리하여 온전한 삶을 영위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스코트 니어링에게 헬렌의 존재가 그러하였을 것이다. 다소 감성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끼친 그의 신념과 삶의 자세는 적지 않은데, 그의 신념과 삶도 헬렌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헬렌의 역할과 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스코트에게 있어서는 그녀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나의 헬렌은 어디에 있는가?
조금더 확대해 생각해보면 우리사회의 구성과 생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도시에서는 서로에게 너무나 무관심하고 시골에서는 타인에게 대단히 배타적이다.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사회적 의식이 결여된 행동과 자세를 자주 보이고 그로 인한 문제와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와 거래속에서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얼마나 이중적인가?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도 생각보다 만만찮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벌써 몇 가지의 사안으로 주고 받은 이야기를 통해 짐작한 것이지만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현명하게 잘 풀어나가야 할텐데 나의 곧추 선 성격이 언제 어떤 문제로 터질지 몰라 미리 조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들어와서 보니 인근에서 가장 귀농자가 많은 곳이 이 부근이라고 한다. 옛부터 터잡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생경하기도 하고 다소 불편한 점들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물 문제가 걸리고 더욱이 차량통행이 많아져 동네가 부산스러워 진 것이다. 어쨋든 불편하더라도 우선은 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한 삼년 부지런히 가꾸고 돌봐야 집이 정착이 될 것이고 동네에도 내 자리가 날 것이다. 결코 나 혼자만이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3월말 까지도 날이 차고 얼음이 얼었지만 이미 봄은 자리를 잡았다. 매섭던 바람도 누구러졌다. 논이고 밭이고 사람들이 나와 거름을 뿌리고 땅을 고르고 농사준비가 한창이다. 그러나 이 봄, 골짜기의 물빛도 풀리고 나무 끝에서는 연둣빛의 새 움들이 숨을 트기 시작하는데 나는 아직도 둥지를 틀지 못했다. 마음만 앞선채 어설픈 감자 세 고랑을 심어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수 없는 것, 부모형제간이나 자식, 부부간이나 친구 이웃들, 그리고 일로 인해 만나는 여러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갈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2011. 4. 5. 송하산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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