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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행복론

방산하송 2011. 3. 2. 12:42

최성각 작가를 통해 알게 된 풀꽃 평화 연구소에 소액의 후원 의사를 밝혔더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책을 한 권 보내왔다. 전시륜의 '유쾌한 행복론'이다. 그는 충청도의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군복무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에 정착한 사람이다. 평생 무명의 철학자로 살면서 자기의 살아온 과정을 한권의 책으로 남겼다. 그러나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몇 년 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책에 수록된 많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가슴이 찡하기도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의 인생은 여러가지 경로를 거쳤지만 일관되게 흐르는 삶의 자세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일찍이 미국으로 가난한 유학을 떠나 동양인이었지만 미국인들과 허물 없는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살았고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평생 독서와 글쓰기, 여행, 그리고 낮잠을 좋아하는 자유인이었다.

 

그의 여자관이나 결혼, 인생에 대한 철학은 자유분망한 것 같으면서도 다분히 평화주의적이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보통사람 들과는 다른듯 하나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주의적이다. 그의 여러가지 재미있는 활동이나 경험은 자신의 진실성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드러나는 삶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많은 것을 새로 깨닫고 되새겨 보게 해 준다.

 

'그분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분이 남긴 책으로 인해 내 삶이 어느 부분인가 아주 좋고 유쾌한 기운으로 채워진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일이 참으로 중요하고, 어떤 일이 진정 감사할 일이고 어떤일이 급하지 않는 일인지 이 책은 낮은 목소리로 알려준다. 읽는 이를 억압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만약 늘 분수를 지키고, 삶을 잘 지킨다면 하루하루가 벅찬 선물이라는 것을 들려주고 있다.'(최성각. 개정판 앞글)

 

그가 군 복무시절 신문에 구혼 광고를 낸것은 유명한 일화인 것 같다. 유학을 가서도 미국 여학생들과 격의 없는 데이트를 즐길수 있는 비법을 터득했으며, 결례를 범한 교수에 대해서는 끈질긴 공세 끝에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후루시초프에게는 외투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나이든 미국 할머니들을 어머니처럼 사귀어 용돈을 얻어쓰기도 했다. 외국 출장길에 바가지 요금을 알면서도 선선히 요금을 지불하기도 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한국 이민 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를 항의하다 회사를 쫒겨 나기도 했다. 아내와의 관계를 평화조약을 통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원만하고 즐거운 관계로 이끌어 낸 지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가 쓴 평화조약이나 미리 작성한 유머스런 유언을 보면 인생에 대한 진지한 철학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신뢰를 깊이 느낄 수 있다.

 

그의 책을 읽는동안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문하게 되고 그의 재치와 용기가 부러우면서도 삶이란 특별하지도 정해진것도 아니며 자기스스로 만족하며 유쾌하고 멋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틀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스럽지만 지성과 진지함이 있는, 유쾌하게 생활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지만 철학이 있는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책을 소개해주고 보내준 최성각이 고맙다.

 

답례로 서각을 하나 파서 보냈다. 서각과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동봉했다.

 

풀꽃 평화 님께.

보내주신 책은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례로 제가 쓰고 새긴 서각을 한 점 보내 드립니다.

글씨나 서각이 미흡합니다.

특히 서각은 최근 시간이 많아 혼자서 연습한 것이라 습작 수준입니다.

종종 이런 물건이 받는 이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제가 쓴 마음의 편지라 생각해 주십시오.

풀꽃 평화 연구소의 왕성한 활동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經有聞草香 경유문초향 길가의 잡초에도 향기가 있다.)

 

전시륜의 책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이러한 것도 매우 유익하고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싶다. 조그만 시민운동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 뿐 아니라 그러한 활동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것도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덧붙여 다음과 같은 생각도 해본다.

고기를 배부르게 먹는 것 보다 부드러운 채소의 맛과 향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더 행복하게 생각하겠다.

골프를 칠 수 있는 여유보다 시골길을 한가롭게 산책할 수 있는 기회를 더 고맙게 생각하겠다.

유흥업소에 가는 것보다 한권의 책을 펴들고 감동을 느끼는 일을 선택하겠다.

힘있는 인사나 권력자는 몰라도 시를 쓰고 노래할 줄 아는 이를 더 반가워하겠다.

아름다운 미인보다 마음이 따뜻한 여자들과의 인연을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겠다.

자식이 법대나 의대에 가는 것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겠다.

나를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일보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을 욕심내지 않고 기쁘고 편안하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겠다.

 

삼월이다. 봄비가 내린다. 남녁에 동백이 붉고 매화향기가 설레일 때가 왔다.

강진으로 해남으로 동백꽃 나들이나 한 번 가야겠다.

 

송하산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