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교육 희망의 불씨 - 울산 교육연구소 현판

방산하송 2011. 5. 2. 22:21

 

울산 교육연구소의 남경혜 사무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소식지 발간에 따른 원고 한 편과, 가능하면 연구소 현판을 하나 파 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다. 오월 초까지 해주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반승낙을 하고 말았다. 원고는 블로그에 실린 글 중에 하나 골라 실으라고 했지만 서각은 난감하였다. 마땅한 나무를 준비 해 놓은 것도 없고 일이 바빠 차분히 글을 팔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4월말 울산에 들리러 가는 길에 전달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이층 서재의 책꽂이를 만들고 남은 송판을 이용해 소품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사실 큰 나무는 무겁고 걸 데가 마땅치 않을 것 같기도 해서이다. 며칠 구상한 뒤 꼬박 이틀이 걸려 글을 쓰고 파고 색을 넣었다. 완성된 현판은 그런대로 봐줄만 하였다. 토요일 울산으로 향하면서 서상호 소장에게 받아가라고 연락을 하였다. 

 

서상호 선생은 참으로 참 스승이다.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다는 것만 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렇게 진실하고 한결 같은지 존경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나를 대중에게 소개 하면서 '나와는 특별한 관계의 사람' 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기뻤다. 사실 서로 간에 그러하다. 학교에 재직 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동안 서로 쳐다보며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동지의식에다 같은 또래의 친구이기도 하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울산교육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동분서주할 때는 어려가지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후원회 조직은 쉽지 않았는데 그러나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 미상불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사실 그가 없었다면 연구소의 탄생은 어려웠을 것이다. 또 연구소 운영도 어려울 것이다. 거의 혼자서 모든 활동을 책임지다시피 열정을 바쳐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데 나는 퇴직을 핑계로 발을 뺀 것이 상당히 미안하다.

 

시청 부근의 전통 찻집에서 그를 만나 서각을 건넸는데, 서각을 펴 본 서 선생이 연신 좋다는 말과 감탄을 반복하였다. 형태와 글씨가 참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서 선생의 즐거운 목소리에 주인이 도대체 뭔가 하고 다가오더니 역시 좋다고 하면서 우리 집에도 글을 하나 파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입구에 걸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정도의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어렵다고 사양하였다.

 

울산 교육연구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신묘 맹춘.  송하산방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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