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산내통신

파리 잡는 즐거움

방산하송 2011. 5. 21. 11:48

아버지의 두번째 기일이 지났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지도(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폐암이라는 것이 원인이기는 하지만) 이 년여가 지났는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앞 마당에 고추를 심고 물을 주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엊그제 고추모를 사다 뒷 밭에 심고 물을 주었다. 아마 고추를 심을 때마다 그 생각이 나게 될 것 같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남자로써 참 외로웠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파란만장한, 구차한, 넉넉하지 못한, 자랑할 것 없는 자식들을 남기고 그렇게 인생을 마치고 눈을 감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제사 음식 찌거기가 나오니 파리가 극성이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모르겠더니 뒷마당 한 켠에 음식 남은 것을 묻고 흙으로 덮어 놓은 것을 운이가 가서 자꾸 들쑤시는 바람에 파리가 들끓게 되었다. 갑바를 잘라 덮고 임시 조치를 하였다. 인월 장에서 천원을 주고 구입한 파리채가 요긴하다. 이것을 들고 장비가 장팔사모 휘두르듯이 종횡무진 집 안팎으로 다니며 파리 사냥을 하였다. 책을 읽다가 나와서, 밭일을 하고 들어와서, 밥을 먹고 나와서, 잠시 시간이 날 때마다 할일을 제공하는 소일거리도다. 집 주변이 온통 파리 시체로 즐비하다. 운이는 파리를 때릴 때마다 지레 놀래 도망을 간다.

 

 

파리채란 것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막힌 발명품이다. 간단한 것이긴 해도 유연성 있는 재질에다 적당한 길이의 손잡이로 손쉽게 파리를 잡을 수 있으니 그저 단순한 물건이라고만 생각이 들지 않는다. 파리에겐 무서운 창이나 칼날과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가 아니겠는가?  파리채의 효용성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쓰는 많은 도구의 기술 수준이 딱 이만한 정도에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수레나 자전거 정도, 그러니까 동력을 사용하는(전기나 석유) 기계는 개인 용구로는 쓰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불가능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얼마전 청소기를 쓰면서 참 대단한 도구라고 생각을 했었다. 목재 작업을 하다보니 많은 먼지와 나무 찌거기와 대패밥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기계를 사용한 결과이다. 그런데 청소기는 이 미세하고 자질구레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순식간에 말끔하게 치울 수가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편리한 기계 덕분으로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은 사람이 늘 그러한 일에 메이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프린터나 복사기가 대량 보급되면서 할 일도 비례해서 늘어난 것처럼...  우리는 늘 일의 능률과 편리성만을 추구하지 그 반대급부적 피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은 손실이기 때문이다. 속도의 증가와 양적인 팽창에는 결코 끝이 없다. 그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대 기술이다. 그와 동시에 자연은 망가지고 환경은 더렵혀지며 자원은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 명확한 것은 속도가 빨라질수록 종말도 빨라진다는 것 뿐이다.

 

 

엊그제 이장님댁에 모가 남았으니 가져가라고 해서 가 봤더니 정확히 필요한 만큼이었다. 아버지 기일날 고맙게 무사히 모를 심었다. 논에 모를 냈으니 늘 물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 오늘 아침에는 양수기 작동법을 배우고 왔다. 또 들어보니 아래쪽 논을 부치는 젊은 친구들은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함양 인근에 우렁이 양식장이 있고 1키로에 오천원씩, 내 논에는 약 4키로 정도 넣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우선 땅을 평평하게 잘 고른 뒤 활착이 안된 모를 손보고 우렁이를 넣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뜻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니 여기저기의 도움으로 흉내는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차츰 동네 사람들과 얼굴이 익으면서 동네에서 너무 떨어진 곳이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주변으로 차량이 자주 지나가 다소 불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좋은게 있으면 안좋은 것도 있다는, 모든 일이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이치를 새삼 느끼게 된다.

 

물꼬를 손 보고 들어와 또 파리채를 손에 들고 마당을 어슬렁 거리며 파리 사냥을 하였다. 파리는 인간에게 백해무익한 곤충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파리는 살모넬라균을 옮겨 식중독, 설사, 복통, 장염 등을 생기게 하는 등 대단히 귀찮은 존재다. 집파리의 경우 한 번에  50∼150개의 알을 놓고 일생 동안 6∼9회 낳는데, 번데기에서 우화한 성충은 빠른 것은 24시간 만에 교미하고 3일째부터 산란을 시작한다. 쉬파리는 이보다 다소 기간이 길다. 파리의 수명은 종류와 계절에 따라 다르나 여름에는 보통 2개월, 성충으로 월동하기 때문에 가을에 우화한 파리는 이듬해 봄까지 살게 된다.<다움> 

생각보다 수명이 긴 편이다. 어쨌든 처치곤란한 곤충임에는 틀림없다. 

 

파리를 잡다보니 적당히 몇 마리씩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많아 극성을 부리지만 않을 정도면 때때로 잡아내는 수고가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라디오에서는 말러의 백주기 특집 교향곡이 울려 나오는데 나는 파리채를 들고 파리 사냥에 열중이다. 엉켜붙은 놈은 같은 날 죽으니 천생연분 이라고 할 수 밖에...  어쩌다 한번의 타격으로 두 마리를 동시에 잡으면 더 흥이 난다. 파리에겐 무서운 살상인데 나는 즐거움을 느끼다니 부처님이 들으면 크게 꾸중을 내릴 일이다.

 

신묘 오월 송하산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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