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혼자 산다는 것

방산하송 2011. 6. 7. 16:42

콩나물국을 모르거나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 흔한 요리를 주부들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는 얼마나 끓일 줄 알까? 며칠 전 냉장고 안에 콩나물이 있으니 콩나물국을 끓여 먹으라는 아내의 말에 콩나물국을 끓여 보았는데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았다. 콩나물을 어느 정도나 끓여야 되는지 양념은 무엇을 넣는지 간은 어떻게 맞추는지 아직 판단을 할 줄 모르니 여러 번 전화로 확인 끝에 겨우 어설픈 국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대로 맛은 있었다. 저녁 준비가 2시간여나 걸렸고 때도 지났으니 맛있을 수밖에...  혼자 산다는 것은 이렇게 혼자서 콩나물국을 끓이는 일이다.

 

가끔 혼자 산다고 하면 적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혼자서 지내는 즐거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먹는 문제가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제대로 음식을 만들 줄 모르니 늘 먹는 반찬에다 단순한 음식으로 해결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부식을 사러 나가는 것도 귀찮을뿐 아니라 무엇보다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재료의 종류와 양을 가늠 못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기본적인 장류의 사용법도 잘 모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먹는 문제가 이렇게 복잡한 일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던 일이다. 잘 먹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몸을 유지할 만한 영양 섭취는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인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염려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음식 만드는 솜씨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가장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엊그제는 함양으로 시장을 보러 갔다. 뒤늦은 호박 등 모종 몇 포기와 쌀, 채소와 국물용 멸치와 다시마 등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건어물 상에서 북한산 버섯이 보이길래 반가워 한 봉지 산 뒤 '먹는 일이 힘드네요.' 했더니 주인아주머니 왈 '그럼요. 두 손 묶어놓고 살 수도 없고 제일 힘든 것이 먹고 사는 일이네요' 했다. 현미를 섞어 쌀도 사고 상추와 대파도 한 단 샀다. 길가에 있는 모종상 아주머니는 호박 한 모종만 달랬더니 선뜻 두 포기에다 가지 모종 두 포기까지 더 얹어 주고는 그냥 가라고 했다. 돈을 준다고 해도 기어이 마다하였다. 아마 끝물이어서 혹 찾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내 놓은 것 같았다. 식빵 한 봉지에다 아이스크림까지 한 입 물고 장 보기를 마쳤다. 이제는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시장보기도 그렇게 쑥스럽지가 않고 쏠쏠한 재미도 있었다. 필요하면 무엇이든 할 수 밖에 없고 또 하게 되는 모양이다.

 

혼자 음식을 만들고 끓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선 아내의 고마움이다. 그동안 매일 음식을 만들고 식사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도 당연한 일쯤으로 여겼으니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가정의 주부들이 하는 가사일이 얼마나 힘들고 귀찮은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고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남자들은 모두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와 같은 여성문제 같은 것부터 인간의 먹는 문제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가? 라든지, 음식과 문화 그리고 지역적인 차이, 음식과 사치, 음식과 계급, 유기농 식품과 농약 문제, 음식 찌꺼기 처리 등에 이르기까지... 식사를 준비하거나 밥을 먹으면서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모든 생물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 욕구가 생존과 생식이다.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가 곧 먹는 일인데 그렇다면 음식을 만드는 일은 또한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우리가 공기나 물의 중요함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음식 만드는 문제도 그저 일상적인 일로 취급할 뿐 별 중요성을 못느끼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식량문제는 중요하지만 요리는 부수적인 것 쯤으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 무엇인가? 밥을 하고 국을 끓이는 일은 사소한 일인가? 누군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텐데 정작 음식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함이나 고마움을 못 느끼고 사니 하는 말이다. 정치도 전쟁도 사랑도 우선은 먹고 난 뒤에 할 일이 아닌가?

 

음식을 만들다보니 요리라는 것이 그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먹는 주식은 대부분 날것으로 먹지 않기 때문이다. 과일 같이 직접 먹는 것도 있지만 거의 삶거나 굽거나 익혀서 먹는다. 또한 부식도 그대로 먹는 채소류 말고는 대부분 여러 가지 재료를 섞고 데치거나 끓이거나 볶은 후에 첨가물이나 향신료를 넣고 간을 맞추어 요리한다. 인간의 까다로운 식성으로 인해 복잡하고 미묘하고 다양한 요리가 발달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어쨌든 맛있는 요리란 재료들 간의 적절한 배합과 적당한 익힘, 그리고 간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 같다. 아무것이나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조화로움, 바로 그것이 요리의 비결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든다.

 

먹고 난 뒤 남은 음식물의 처리 문제도 그동안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매일 나오는 음식찌거기 처리는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다. 우선 가능한 한 음식물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찌꺼기까지도 다 긁어 먹고 국물도 둘러 마시고 만다. 큰 통에 모았다가 뒷마당 한켠에 땅을 파고 묻고 있는데 그것이 모이면 또 다른 곳으로 운반해 묻어야 한다. 먹는 한 발생하는 음식 찌꺼기, 자연 토양으로 완전 발효되어 돌아가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첨가물 때문에 실제로는 퇴비로도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유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시급히 찾아야 하겠는데 그에 앞서 음식 낭비부터 줄이는 일이 중요한 일이다. 맛있는 음식, 고급스런 요리나 별미 같은 것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평소 우리가 먹고 배출하는 음식쓰레기 문제도 그만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끔 생선류나 해조류 등도 곁들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장만하기가 쉽지 않아 거의 포기하고 산다. 대신 한번 씩 식당에 가서 사먹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반찬도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해야겠다. 기본적인 장류나 김치는 내손으로 직접 심고 담그고 싶다. 시골에서 살면서 최소한 그 정도는 해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런 것도 하지 않으면 시골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제철에 나는, 그 지역에서 나는 식품을 먹는다는 생각을 해야겠고 육식은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좋겠다.

 

집 주변 정리가 늦어 밭농사가 모두 늦었지만 텃밭에는 고추, 오이, 열무, 상치, 여름 배추, 가지, 토마토, 고구마, 호박, 들깨씨도 뿌리고 파프리카까지 구해 심어 놓았다. 시기가 늦어 잘 자랄까 걱정은 되지만 흐뭇하다. 길 위 밭에는 어머니와 장을 담글 콩을 파종 했다. 무사히 수확이 이루어진다면 올 가을 부터는 내가 장만한 곡식과 채소로 장을 만들고 김치를 담그는 등 기본적인 것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집 입구에 서면 향기로운 꽃 내음이 환하게 다가오는데 인동 꽃이다. 집 주변 여기저기 돌 틈으로 인동초가 제법 많이 올라와 있는데 한참 만개하여 그 향이 날아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좋아 한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꽃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꽃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송나라 때 어느 여니(비구니)가 지었다는 오도시가 생각난다. 봄을 찾으러 온 산을 헤매고 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지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매화향기를 맡고 둘러보니 정작 봄은 자기 집 울타리에 핀 매화꽃에 와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에 있을 수도 있고,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멀리, 거창하게, 화려한 것만을 좇지 말고, 훌륭하고 위대하고 숭고한 일을 하겠다고만 고집하지도 말고, 가까운 것부터 작은 일로부터 즐거움을 찾고 성실하게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자기가 먹는 음식을 스스로 해결해 보는 것도 그러한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니...

 

신묘 유월 칠일. 송하산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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