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기다리는 마음

방산하송 2013. 1. 29. 21:10

사람의 교유란 참으로 다양하다. 시간과 생활공간이 겹쳐짐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동년배의 친구가 많은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긴 하나,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그 사람의 직업이나 하는 일과도 상관없이 관계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생각이나 지향하는 방향이 비슷하다면, 또는 함께 할 공통의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런 것이 아니라도 배울 점이 있고 존경할 만한 구석이 있다면, 더군다나 속 깊은 정을 서로 나눌 수가 있다면...  '재자가인(才子佳人)이 없다면 그뿐이겠지만, 있다면 마땅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아껴야 한다.'고 했으니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남다른 인정을 느끼는 것은 무슨 정해진 바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많은 이들을 사귀고 알고 지내는 것이 무슨 훈장인양 떠들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속된 사귐이란 결코 오래가기 어렵고 진정한 우의를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그런 계산상의 교유관계가 많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고 상례다. 그런 점에서 만나지 않아도 늘 마음이 편안하고 변함없는 감정을 느끼는 친구가 있다면 큰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울산의 류선생이 그렇고 오래되기로는 상엽이 만한 친구가 없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젊은 시절처럼 무슨 일을 함께 하거나 도모할 기회는 없지만 늘 마음에 한결같이 남아있는 친구들이다. 산내 와서 알게 된 원선생도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사귐이 일천하지만 알고 지내던 사이인 듯 마음이 통하고 오래된 사람처럼 편안하다. 물론 여기서도 많은 이들을 이런저런 일로 만나고 서로 알게 되기도 했지만 내 성격 탓인지 선뜻 마음을 연 경우는 거의 없다. 고결함으로 세상에 이름을 얻는 것이 화평함으로 세속과 어울림만 못하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도 까탈스러운 성질머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엊그제 울산의 배해경 선생과 통화를 했는데 동년배는 아니지만 배선생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나이 차는 있지만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그렇게 순수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 그가 반듯한 교사로서의 삶을, 한결같이 참 교육자로서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늘 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하였다. 헤어진 뒤에도 가끔씩은 안부를 묻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얼굴을 보기도 했는데 산내로 들어온 뒤로는 쉽게 만나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전화 끝에 혹 이번 주말 시간이 날 것 같아 방문할지도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그를 위한 신년 휘호를 하나 썼다.

 

 

天下無書則已 有則(必)當讀 無酒則已 有則(必)當飮 (천하무서즉이 유즉당독, 무주즉이 유즉당음)

천하에 책이 없다면 모르되 있을진대 모름지기 읽어야 할 일이요, 술이 없다면 그뿐이나 있다면 마땅히 마셔야 할 일이다. 명산이 있으면 노닐어야 할 일이요, 꽃과 달이 있다면 당연히 감상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일이란 실행에 옮겨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 너무 얌전한 그에게 중년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활발하게 활동하며 살라는 뜻으로 쓴 격려다.

 

지기란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우가를 읊었던 고산이나 국화를 사랑했던 도잠처럼 매화나 소나무, 학 등을 지기삼아 살았던, 자연을 벗 삼아 산 많은 선인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시골 살이가 좋다고 해도 마음을 터놓고 왕래할 수 있는 벗 하나 없다면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술잔이나 나누는 친구 말고 모름지기 예술과 문학을, 인생과 철학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하나라도 가까이 있다면 얼마나 푸근해지겠는가? 그런 바램은 본능적으로 사람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속성일 것이니 가까이서 찾을 수 없다면 멀리 있는 친구라도 옆에 있는 듯 서로 마음을 나누고 교류하며 지낼 일이다.

 

오래 전 존경하는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을 읽다가(나는 해방 후 이런 인물들이 국가의 중추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지극히 잘못된 비극의 시초라고 생각한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 선생과 백년지기였다는 것을 알고 참 부럽기조차 했었다. 물론 생사를 넘나드는 고락을 함께 한 사이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적 면모가 서로 어울리는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장준하 선생이 매년 첫날이면 술을 한 병 사 들고 김준엽 총장을 찾아가 자기에게 처음으로 술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는 핑계로 술을 대접했다는 얘기는 그것이 곧 그들의 뜨겁고 진한 우의의 다른 표현이지 않겠는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가?

 

어려울 때 변함없는 친구, 곧 진정한 친구란 상대의 상황이나 처지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늘 이런 말씀을 들려주었다. 어느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너무 친구들을 함부로 사귀고 또 그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보고 돼지를 잡아 거적에 싼 뒤,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데 몰래 감추어야 하니 너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그러나 아들의 친구들은 모두 문을 닫고 외면을 해버렸다. 반대로 아버지의 친구는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을 이끌었다. 친구의 집에 들어가 마침내 돼지를 삶아 잔치를 벌였다는 얘기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씀을 유명한 얘기를 통해 나에게 강조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 사람이 그런 친구만 가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세상이란 복잡해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서로 알고 지내며 일정한 우의를 나눔으로서 삶을 원활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그 모두를 다 포용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결코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태도는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이다. 항용 상대에 대한 무시나 무례한 언사, 반대로 지나친 친근감이나 과도한 인사는 모두 못난 사람들의 속성이며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이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방어심리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런 점을 늘 반성하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에 등 돌리고 사람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런 문제는 더 고약하게 얽히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게끼처럼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답도 없는 사람관계란 그만 제쳐두고 우선 내가 할 일이나 걱정하는 것이 순서인 듯도 하다. 그나저나 배선생이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그와 더불어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며 별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가 된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일들이 추억처럼 생각난다. 유성우를 관측하러 한 밤중에 운문재에 갔던 일, 습지 조사한다고 우포로 새만금으로 갔던 일, 멀리는 동강으로 태백으로 돌아다녔던 탐사여행, 망원경 관측, 그리고 과학실 정리한다고 남는 물건을 밤중에 부수어 내다 버린 일, 폐기물 처리하러 갔다가 화재가 발생한 일 등... 보고 싶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이렇게 즐거운 일인가 보다.

 

 

배선생의 방문을 기다리며.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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