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산내통신

대문을 놓다.

방산하송 2013. 9. 24. 10:11

 

진즉부터 입구에 차단용의 가로막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완성을 보았다. 어차피 사방이 트인 집인데 높은 대문을 달아본들 소용없는 일이고 우선은 내가 그런 대문을 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양쪽에 말뚝을 박고 쇠사슬을 연결하는 것이  무난했으나 도저히 쇠사슬을 걸고 싶지는 않아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가장자리에 돌을 세우고 나무 막대를 걸치는 것이었다. 추석날 아이들이 온 김에 집 뒤에 남겨두었던 큰 돌을 몇 개 운반해 놓고 다음 날 부터 돌을 세우고 옆으로는 얕은 담을 쌓았다. 마지막에 동네 앞 개울가에 가서 대나무를 잘라 돌 위에 걸쳤더니 그럴듯한 대문이 만들어졌다. 대문을 세운 것이 아니라 놓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어쨌거나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운 셈이다. 주로 외지인들이지만 지나가던 차들이 함부로 집 마당으로 들어와 불편하게 만드는 무례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옛날에는 솟을 대문에다 삼문을 달고 위세를 자랑하기도 하였고, 요즘에도 철대문, 자동대문으로 감히 안을 넘볼 수 없도록 방비를 해 놓기도 하지만 스스로는 고립을 자초하고 밖으로는 단절을 선언하는 표시일 뿐이다. 소박하고 키가 작아도 정감있는 대문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우리 집 대문은 제주도 것의 변형이라 할 만할 것이다. 이 대문은 집과 앞마당이 훤히 다 보이고 다리가 낮아 어른이면 누구나 넘어갈 수 있으며 개는 밑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다. 하늘이 가득 그대로 들어오고 바람도 시원하게 빠져나가고 지나가던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살피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여느 대문처럼 안과 밖을 구분하는 데는  전혀 손색이 없다.

 

과연 대문을 다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오랜 고민의 결과 만들어진 것이니 저 대문은 내 의지와 철학의 산물이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나누고 구분 짓는 것이 속성이어서 안과 밖을, 나와 남을, 남과 여를, 종교와 지역을, 인종을, 드디어는 계급을 나누고 서로 다름을 주장하고 차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문명의 역사라는 것도 바로 차별과 구분의 역사인 것 같다. 쪼개고 나누고 합치고 전쟁을 수단으로 삼아 오늘날까지도 그 짓을 멈출 줄 모른다. 자연 세계에 무슨 구분이 있던가? 모두 인간이 임의로 나누고 분류한 것이다. 잡초를 구분하고 해충을 정하고 독버섯을 가리며  집짐승과 산짐승, 초식과 육식동물을 나누고, 열대니 온대니 기후를 구분한 뒤 생태계도 나누고, 나중에는 DNA를 나누어 분류하고 세고 앉아있는 것이 사람이다. 같은 종인 인간에게도 똑같은 짓을 적용해 이리저리 편을 가르고 다툼질하는 것이 다반사니 늘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이기려고만 드는 못된 습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대문을 달고.  소은

 

'산내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웃사촌  (0) 2013.11.04
아침 식탁에서의 망상  (0) 2013.10.01
안개  (0) 2013.09.09
산 공부  (0) 2013.08.04
  (0) 2013.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