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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통신

이웃사촌

방산하송 2013. 11. 4. 08:23

양파 심은 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박진철씨가 집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무얼 들고 나오는데 음식인 것 같았다. 집사람의 명령으로 가져 왔다고 하면서 건네준 것은 반찬 몇 가지였다. 이런! 오늘 아침에 공소에 나갔다 마침 장날이어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반찬거리 사러 온 박씨네 집사람을 만났었다. 어물전으로 가길래 나도 요리를 할 줄 알면 생선 좀 사다가 먹을 텐데 아쉽다고 했더니 그 말이 걸렸던 모양이다. 생선조림과 국, 밑반찬 두어 개를 딸려 보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나중에 인사를 톡톡히 하겠다고 전하라고 했다.

 

가까이 살아도 서로 바쁘니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귀농한 이웃 사람들끼리는 마음씀씀이가 따뜻하고 살갑다. 바깥사람인 박진철씨도 엊그제 안방 창문의 유리가 깨져 도움을 요청했더니 제 일처럼 알아보고 수리하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시스템 창호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웃사촌이라고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니 이보다 더 고마운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옆 집 현천씨는 친환경 양계장을 한다. 명절 때마다 달걀을 두세 판 씩 얻어먹는데 그 양이 만만치가 않다. 대신 양계장을 비울 수 없어 집에도 못가는 사람들인지라 초대하여 명절 음식을 한 끼씩 같이 나눈다. 그동안 남의 땅을 빌려 하던 양계장을 옮길 계획으로 인월에다 땅을 구입했는데 동네 사람들의 반대가 심해 진행이 잘 안된다고 했다. 야마기시 양계법으로 규모가 크지 않고 오염이나 냄새가 거의 없는데도 무조건 싫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이미 하던 양계장은 비웠고 닭도 다 처리했는데 공사를 못하니 걱정을 많이 한다. 규제가 덜한 전남지역으로 가볼까도 궁리 중이라고 하는데 예삿일이 아니다.

 

가장 만만한 것은 위쪽의 김용현 선생이다. 늘 바쁘게 왔다 갔다 하지만 무슨 일만 생기면 먼저 도움을 청하는데 힘닿는껏 잘 도와준다. 마침 장인 상을 당해 전주에 가 있는데 개밥하고 닭 모이 좀 챙겨주라고 전화가 와 저녁 무렵에 올라갔다 왔다. 개, 닭, 거위 등 짐승을 많이 키워 밥주는 것도 만만치 않다. 시골에서는 집을 비우면 제일 걱정이 짐승 밥주는 것이다. 나도 집을 비울 때 우리 운이 좀 챙겨달라고 여러번 부탁을 했다.

  

작은 학교에 근무하는 김태준 선생도 사람이 참 좋다. 대안학교는 보충수업 자율학습 같은 것 하지 않아도 일반학교 선생들보다 더 바쁘다. 늘 아이들과 무슨 행사를 하고 현장학습이나 특별 프로그램이 많은 모양이었다. 대금을 꽤 오랫동안 배웠다고 하길래 한 번씩 물어보려고 연락을 해도 얼굴보기가 쉽지 않다. 어제 오후에 현관의 물받이를 손 보고 있는데 마침 집으로 올라가다 나를 보고 마당을 들어와 그동안의 안부와 이런저런 이야기 등을 나누다 올라갔다. 방학 중에는대금을 한 번씩 지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원성제 선생 역시 늘 바빠 간혹 출퇴근 할 때 얼굴만 보지만 스스로 아우를 자처하며 깍듯하게 대접을 한다. 가장 마음이 통하는 사이이기도 한데 아마 교사로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해서인 것 같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다 깍듯하다. 원체 겸손하고 바탕이 예의 바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 누구하고도 척지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반 너머 마음을 접고 사는데 젊은 친구가 배울만한 점이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 세집이나 되는데 모두들 나만 빼놓고 다 바쁜 사람들이다. 나도 집안에서 바쁘다고는 하지만 그저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으니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 만큼이야 하겠는가? 그런데도 늘 부탁은 내가 먼저 하는 편인데 언제라도 기꺼이 수고를 마다잖으니 그래서 더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실은 모두 밖으로 나가니 본격적인 농사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내가 제일 많이 농사일을 하는 셈이다. 김용현 선생이 맨날 일만 하느냐고 타박하면 농사짓는 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큰 소리 치기도 했다. 원성제 선생도 늘 형님 농사솜씨가 부럽다고 엄살을 피우고, 저 위쪽 한치영씨는 우리동네에서 가장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윤선생님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귀농한 친구들하고는 이렇듯 잘 지내고 있는데 어쩐지 아랫동네 사람들하고는 아직도 벽이 있는 것 같고 마음이 잘 가지 않는다. 아마 그들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따듯하게 맞아 주고 도움을 준 뒤 협조를 요구해야지 자기들은 마음을 열지 않고 베풀지 않으면서 귀농한 사람들이 잘하니 못하니 비난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친절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동네 문제만 발생하면 의례껏 귀농자 탓부터 먼저 하니 자꾸 마음이 멀어진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고 그냥 저냥 지낸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거저 생기지는 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 지내면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다. 항상 나부터 먼저 도와주고 베풀어야 원만하고 따뜻한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뭐라도 하나 생기면 나누고 좋은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같이 거드는 것이 바로 이웃 사촌이 아니겠는가? 냄비를 열어보니 고등어조림이 들어 있었다. 고등어가 아까워 식은 밥이 남아 있었지만 새 밥을 지었다. 이웃의 호의로 모처럼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잘하면 운이도 오랜만에 생선 냄새 좀 맡아볼 수 있겠다.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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