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다녀왔다. 진즉부터 잘 알고 있던 지인의 딸 결혼식 때문이었다. 현직 시의원이고 딸은 사법고시를 통과한 판사 신분이니 사람들이 붐빌 것이라는 우려를 하면서도 부모님 장례 때마다 먼 거리를 찾아와 준 후의를 저버릴 수 없어 참석한 것이다. 알고 지내는 다른 사람들도 많을 텐데 나까지 가서 공연히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는데 예상대로였다. 월드컵 구장에 딸린 시설이니 여유가 있어 시내만큼이야 하겠느냐는 생각은 초입부터 어긋났다. 공원같이 넓고 그 많은 주차시설에도 불구하고 진입로부터 차가 밀렸다. 입구에서 한참이나 지난 곳에 겨우 차를 세워놓고 부랴부랴 식장으로 들어갔다.
매번 느끼지만 너무 혼잡했다. 왠지 안 올 곳에 온 것 같고 정신이 산란스러워 영 불편했다. 혼주를 찾아 인사를 나누고 축의를 전달하고 돌아서서 이리저리 아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다 곧 주차장 쪽으로 나와 한숨을 돌렸다. 아무래도 빨리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정우규 박사와도 그냥 헤어져 식장을 빠져나왔다. 정작 신랑신부는 얼굴도 못 보았으니 이건 제대로 된 축하도 아니다. 가을 오후의 날씨는 쾌청했고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길 주변의 가로수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마음은 까닭 없이 섭섭하고 허탈하기까지 하였다. 그 복잡하던 차들도 그새 태반이 사라졌다. 이게 뭔 짓인고? 우울한 기분으로 공원을 빠져 나왔다.
요즘의 결혼식은 체면치레 때문인지 옛날보다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이런저런 이벤트성 행사도 많다. 그러나 인사는 넘쳐나지만 진심어린 축하는 드물다. 그러니 나같이 딸이 결혼하는데 아비만 보고 도망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의 결혼식은 이미 품앗이도 아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여기저기 나간 돈 걷어 들이겠다는 심사가 엿보일 때도 있다. 혼쾌히 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때마다 눈치 보느라 얼마나 저울질 했겠는가? 무시하자니 뒤가 구려 어쩔 수 없이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받아도 부담으로 남는 것은 마찬가지다. 주거니 받거니, 나이 들면 가장 많이 나가는 것이 경조사비라는 말이 나옴직도 하다. 우리의 풍습이고 미덕이기도 하지만 이미 세상이 변했는데 구태의연한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 그것도 빈익빈 부익부라 권세 있고 잘 사는 사람은 돈과 사람이 넘쳐나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역시 빈약할 수밖에 없다. 세상 이치가 그런가 보다.
집에 들러 잠시 한숨 잤는데 몸이 영 무거워지는 것 같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아무래도 산내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 늦게 다시 집을 나섰다. 오면서 이번 기회에 주변의 경조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입장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정리를 해야 나에 대한 것도 정리가 될 것이 아닌가? 이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은 자제하도록 하자. 큰 결례가 아니라면 축의나 부의도 생략하자. 정 미안하면 전화로 인사를 하고 반드시 성의를 표시해야 할 경우도 현재 나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삼되, 준 것은 잊고 받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대로가 아니라 지금 나의 형편과 마음의 정도를 가늠하여 결정하도록 하자.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계산적인 세상이라 그런 인사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살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러나 그런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나고자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았던가?
결혼과 장례, 인간의 삶에서 참으로 귀중한 순간이다. 한 인생이 짝을 만난다는 것이야 말로 완전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순간이며, 인고의 세월 희로애락을 마치고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숭고한 순간인가?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순간들이 시끄러움과 계산적인 생각으로 얼룩진다면 얼마나 치욕적인가? 물론 그것이 한 개인의 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곳이나 결혼이나 장례문화가 발달하고 지역적인 특색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지 않은가? 그 이루어짐과 과정을 공유하며 기쁜 마음과 사랑으로 축복하고, 슬픔은 나누고 위로하는 절차인 것이다. 물론 바쁘고 어려운 서민들이 특별히 어떻게 다른 방도를 취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꼭 그렇게 부담스럽고 낭비적인 행사를 치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가까운 사람의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동참하고 같이 즐거워하거나 위로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복잡해진 세상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이해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인사치레로 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사는 가족과 친지들을 모시고, 잘 알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나 이웃 사람들만 초대하여 치르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본다. 본시 우리의 품앗이란 같은 마을에 사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혼사나 장례는 혼자 힘으로 치루기가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모두 나서서 같이 도와 일을 처리했던 것이고, 많은 사람을 접대하기 위해 음식과 일손이 필요하니 십시일반 부조를 했던 것이다. 지금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살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처리해주는 곳이 있으니 굳이 사람 손이나 부조가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오고가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든가? 피차간에 피곤한 짓은 그만하고 가족과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로만 행사를 치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더 생각이 드는 것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결혼식도 가족과 친지, 친구들만 초대하여 우리 집 마당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동의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축의는 생략하고 마음만 받기로 하되, 조촐하지만 진지한 결혼식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당에 자리를 잘 꾸미고 진행순서도 같이 의논하여 재미있게 잔치를 치르면 도시의 복잡하고 도식적인 행사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의미 있는 결혼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집에 돌아와서 마당을 굽어보았다. 몇 십 명은 충분히 모여 잔치를 치를 만하다. 큰 소나무 아래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도 좋은 일일지니...
어느 결혼식장을 다녀와서.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