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고문하는 세상

방산하송 2013. 10. 19. 12:33

풀꽃 평화연구소에 들렀다가 최성각 소장의 글 '나를 고문하는 밀양의 계삼이'를 보았다.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녹색칼럼이다. 밀양의 송전탑 문제로 고군분투하던 이계삼 선생이 단식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앉으나 서나 그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는 소회였다. 나 역시 그 여리고 순한 사람이 단식이라는 극한투쟁을 결심했을 때는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요즘 다른 일로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전교조가 법외노조 문제로 엊그제부터 총 투표에 들어갔고 결과에 관계없이 오늘 서울에서 교사대회를 연다고 하는데(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아마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는 쪽으로 결정이 된 것 같다.) 나도 참석을 하러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변에 알아보니 원선생도 김선생도 모두 바빠 못 간다고 하였다. 남원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한다고 하는데 혼자서라도 나갈까 고민을 했으나 환절기여서 그런지 엊그제부터의 몸살기가 가라앉지 않아 결국 오늘 아침 눈을 뜨고도 주저앉고 말았다. 사실 며칠 전부터 콩을 거두나 들깨를 베나 밭을 매거나 집안일을 할 때도 늘 이 문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심산인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깔아뭉개고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참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기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송전탑이나 전교조 문제 자체가 아니다. 국정원 사건이나 NNL 공방, 그리고 결코 지워질 수 없는 4대강의 비극 그 자체만을 가지고 속을 끓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막무가내의 상황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울화통 터지는 일이고, 어리석은 민초들이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며, 이런 몰상식하고 비열한 짓을 정치랍시고 우겨대며 정신을 홀려 놓고 뒤로는 그들의 사익을 철저히 챙기고 있는 정치모리배들이 가증스럽기 때문이다. 거기에 빌붙어 친일을 정당시하고 식민통치를 미화하며 과거의 독재까지도 찬양하는 등 어용 지식인들까지 설치고 있으니 참으로 암담하기 짝이 없다. 이러다가는 친일이 애국이 되고 독립운동이 반역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심히 우려스럽기도 하다.

 

세상이 사람들을 고문하고 있다. 밀양의 노인들을, 젊은 청년들을, 영세사업자와 노동자를, 가난한 서민과 농민, 그리고 어린 학생들과 교사들을... 정당한 절차와 상식과 공정한 법의 논리가 사라진 세상이란 참으로 잔인하고 끔찍하다. 억지와 궤변과 속임수가 횡행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의 기본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있는 자들의 세상, 강자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꽉잡혀 옴쭉달싹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이 끌고 가는대로 끌려 다니다 구덩이에 처넣으면 아무소리도 못하고 처박혀 죽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익어가는 미꾸라지처럼 그것을 못 느끼고 있다. 아니 엉뚱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거품을 물고 손가락질 한다. 좌파니 종북이니 빨갱이니. 한 마디로 파렴치한 억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것은 지역주의와 거짓 이념에 철저히 중독된 결과이며 두부 안 쪽 좀 더 좋은 자리에 들어가고 싶어 다른 놈을 밀어내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니다.

 

절망스럽기 짝이 없다. 함부로 내뱉는 정치인들의 입을 보거나, 재벌들의 횡포, 권력기관의 안하무인, 언론의 기회주의적 작태,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다고 해도 가진 자 들의 횡포는 도를 넘어섰다. 모든 공적인 것을 사유화하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 놓았다. 조금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고 매도하여 설자리를 뺏어버린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경고하고 싶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철옹성이라 한들 땅이 꺼지고 물이 샌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사회의 근간이 무너진다면 누구도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밑바닥을 파헤치는 어리석은 욕심을 그만 부리라는 것이다. 밑바닥이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을 때 그나마 수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거대한 악을 뿌리 뽑지 않고서는 아무리 지엽적인 처방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우리가 노예 근성을 버리지 않으면, 제살 뜯어먹기에 바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그들의 손아귀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힘이 조직적으로 우리 삶의 밑바닥을 흔들어 대고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모르고 눈앞의 조그만 이해에 얽혀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희망은 없다. 개인적인 생활을 도외시 할 수는 없겠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이나 구조, 우리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정책의 결정이나 시행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정치다. 정치란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최선의 타협책을 찾아내는 과정이며, 우리의 현재 생활을 담보하고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인들은 나라의 장래보다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고 있다. 누가 그것을 감시하고 해결해 줄 것인가?

 

한 가지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오불관언 초연한 대통령의 처신이다. 도대체 구중궁궐 속에서 놀다가 한 번씩 유람이나 나가는 왕의 흉내를 내는 것인지, 환관에 둘러 싸여 배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한탄이 절로 나온다. 대통령이란 국정의 방향을 세우고 이끌며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가 아니던가? 국가적인 일들이 자기와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무엇하러 그 자리에 올랐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다. 편향적이고 일방적인 인사와 정책만을 고집하다가도 문제가 불거지면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하니 정치가 나락으로 빠져들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가 권력기관들은 일부 정치세력의 주구가 되어 마음대로 날뛰고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것 아닌가? 도대체 누구의 대통령이며 무엇을 하기 위한 대통령이란 말인가? 그 권력이라는게 누구로부터 위임받은 것인가?

 

제대로 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고 허구헌날 이념타령에다 상대 진영 흠집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정상적인 통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교조가 정부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도 교육적인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부도덕한 정치적 술책을 호도하고자 국민의 눈을 속이는 먹잇감으로 이용하겠다는 속셈일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보완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그것을 빌미로 노조를 공격하고 와해시키고자 하는 것이 과연 정부가 해야 할 정당한 일인가? 그들이 전교조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늘 정치적이라든가 이념적인 세력으로 매도하고 몰고 간 것은 소위 보수세력들이었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정당하고 바른 역사관을 지니고 있다면 모르겠으나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고 걸림돌이 된다 하여 전교조를 반민주 반국가 세력으로 몰고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무엇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교육,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교육, 아름답고 건강한 교육을 지향하는 전교조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무엇을 바라고 없는 시간 쪼개어 비민주적인 교육제도와 불합리한 교육행정을 고치겠다고 쫒아 다니는지, 무슨 득을 본다고 학생의 인권, 교사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총대를 메고 나서는지, 무엇하러 사학의 비리와 부패를 고발하여 미움을 사는지, 왜 욕 얻어 먹어가면서 관리자들의 부정과 횡포를 고발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는지, 무슨 심사로 일제고사, 보충수업이니 자율학습을 하지 말자고 우기는지, 얼마나 더 잘 가르치겠다고 밤중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며 궁상을 떠는지, 그들이야말로 바보들이 아닌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제 안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세력이다. 고분고분 말 잘 듣고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특별났다고 나서기는. 배가 부른게군! 누군 그렇다는 것 모르나? 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러다가 결국은 쫓겨나고 해직당하는 그들은 정말 바보들이다. 그런 영악하지 못한 바보들이 어찌 해직 동료들을 내칠 수 있단 말인가? 정부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더 세게 밀어붙여 이번 기회에 아예 뿌리를 뽑자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바보들은 무서운 것도 잘 모른다.

 

가을 햇볕이 따사롭다. 비와 바람과 더위를 이겨낸 들판의 곡식들은 더욱 아름답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다면 이제 그들은 다시 바람 부는 광야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들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의 세상, 비겁하고 어리석은 맹목의 시선들, 또 다시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겠지만 모진 풍파를 이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전교조를 사랑하는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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