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산내통신

두릅이 향기로운 철인데

방산하송 2014. 4. 17. 10:30

하루 종일 고추밭과 참깨 밭을 일구고 진이 빠져 저녁 먹을 생각도 안하고 어두운 방 우둑히 앉자 있는데 운이가 짖는 소리가 났다. 누가 왔나 보다 하고 누구시오? 했더니 윤선생 좀 나와 봐! 하는 소리가 났다. 건너편 양재삼 어른이었다.

 

-늦게 왠일로?

-응, 택배 부치고 남은 것인데 먹어보라고.

 

아마 두릅을 꺾어 여기저기 보내주고 남은 모양이었다. 양손에 가득 두릅을 건네 주셨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들어와서 보니 제법 양이 많았다. 두릅을 보니 갑자기 저녁 먹을 생각이 났다. 서둘러 씻고 두릅을 절반으로 나누어 물에 데쳤다. 초장을 만들어 한 입 찍어 먹어보니 음, 부드러운 맛! 입에 착 감긴다. 밥은 놔두고 두릅만 자꾸 집어 먹었다. 나중에는 아예 초장을 두릅에 부어놓고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요즘은 봄채소 반찬이 많다. 아니 해먹을 채소나 나물이 지천이다. 미처 챙기지 못해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지런만 하면 진수성찬을  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엊그제 집사람이 와서(은총이 듬뿍 내리기를!) 만들어주고 간 미나리, 머위, 돋나물 반찬은 모두 집안에서 캔 것들로 만든 것이다. 거기에다 풀을 매다 거의 마늘 수준인 달래를 캤는데 달래장을 만들어 나물에 곁들이니 그 향이 더욱 입맛을 돋워 주웠다. 가죽나무와 엄나무 순도 곧 나올 때가 되었다. 뒷산에 가면 고사리와 곰취, 참취 등도 많이 있는데 가기가 뭣해서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조금 자란 취를 캐다 뒷담 머위밭에 붙이면 좋을 것이다. 뒷밭에 심은 고사리는 아직 밭을 넓혀야 하기 때문에 이번 봄에 가능한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오가피 어린잎도 맛있다고 하고 산마늘이나 비비추, 방풍나물 같은 것도 좋은 반찬거리라고 하지만 말만 들었지 역시 엄두를 낼 형편은 못된다. 그저 귀동냥으로 듣고 어쩌다가 동네 식당에서 맛을 볼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자기 주변에서 생산한 것, 더욱이 그날 따서 그날 먹는 채소나 과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도시에 나오는 채소나 과일이란 산지에서 중간 상인을 거치고 도매상을 거쳐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미리 따거나 여러 날 지난 것들이 많다. 당연히 신선도나 맛이 처음과 같을 수가 없다. 수입해 들어오는 것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 뒤에 토마토를 심어놓고 다 익은 것을 따 먹어보니 그렇게 달고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 시장에 나오는 토마토의 맛이 왜 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는 딸기 맛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시골 사는 낙이 있을 것 아닌가?

 

요즘의 입맛은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식생활의 현대화로 가공식품이나 완성된 조리식품의 공급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들어진 식품에 입맛이 길들여지면 자연의 입맛은 점차 잊게 된다. 국제화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여러 가지 식품이나 과일 등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요즘 아이들 중엔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환경이란 기후나 자연현상 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품이나 채소, 요리 등 식생활 조건도 중요한 환경 요소이다. 열대지역의 사람이 한대지역에서 선호하는 식품을 먹고 살 수 없을 것이다. 내륙에 살면서 해양 식품을 주식으로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유럽이나 서양에 가서 산다면 그 곳의 식품이나 음식을 주식으로 섭취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우리나라에 살면서 과도하게 서구식 식품을 선호한다면 분명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세계화란 이런 경계도 무너뜨리고 있지만 세계화란 미명아래 지역적인 특색이나 전통이 없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것.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라면 욕심 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맛있고 신선한 재료를 구할 수 있다. 자기 땅에서 나지도 않는 식품에 너무 한 눈 팔지 말 일이다. 별미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일상의 식품이 될 수는 없다. 괜히 사먹어 버릇하면 입맛만 버릴 수 있다. 상업적으로 파는 음식이나 식품도 어쩔 수 없이 값싼 것이거나 오염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몸에 이롭기보다 해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좀 불편하더라도 시골에서 생산하는 사람과 직접 연결해 구입해 보거나 그런 식품을 취급하는 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택배를 이용하여 정기적으로 우리 식품을 공급해주는 소규모 영농조합 같은 곳도 있다. 우리 동네도 귀농한 친구들 몇이 모여 지리산 꾸러미라고 하는 식품 공급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찾아보면 깨끗하고 값 싼 양질의 채소나 과일을 구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물론 자기 손으로 직접 생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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