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산내통신

천사들을 만나는 날

방산하송 2014. 5. 20. 23:07

하루가 늦었다. 김용현 선생이 퇴근하는 모습이 보이래 차에다 대고 "왜 안 갖다 주는 거야?" 큰 소리로 고함을 치니 "오늘 갖다 줄 거예요." 하고 올라갔다. 저녁 무렵 뒷밭에서 대파 모종 옮긴 것을 손보고 있는데 운이가 짖는 소리가 나고 "할아버지 저기 있다." 하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라니?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이 친구들한테 만큼은 허락을 할 수밖에 없다. 앞마당으로 나가니 두 천사가 와 있었다.

 

마루와 아라가 달걀과 거위 알을 들고 서 있고 뒤에서 개구쟁이 남동생 이루가 천방지축 까불며 따라왔다. 마루는 계란을, 아라는 자그만 바구니에다 거위 알을 두 개 담아가지고 왔다. 곧 운이하고 눈을 맞추느라 개 집 앞에서 열심히 쳐다보고 논다. 잠깐 기다려! 잔돈이 없어 만 원짜리를 주고 다음 것 까지 한꺼번에 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을 두어 장 찍었다. 어제 올 텐데 아라가 거위 알을 그냥 들고 오면 깨질 것 같아 못 왔다고 했다. 그래서 조그만 바구니를 구했는가 보다.

 

위쪽에 사는 김용현 선생의 딸인 둘은 이란성 쌍둥이다. 둘 다 귀엽다는 것 빼고는 생긴 모습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들이다. 작년까지는 아빠 차로 등교를 했는데 올 해부터는 아침이면 우리 집 옆에 난 길을 따라 등교를 한다. 김용현 선생은 산내 초등학교에 근무한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솜씨도 있는데 늘 무엇인가 공사를 하고 직접 만든다. 고물 포크레인을 가지고 있는데 가끔은 포크레인 소리도 요란하게 난다. 재작년에는 학교에서 오래되어 철거하는 놀이시설을 모두 실어다 마당 언저리에 늘어놓았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놀이공원 같다. 개, 닭, 거위, 오리 등도 키우는데 그 양이 만만치 않다. 아마 아이들이 편안한 정서를 가지고 건강하게 자라는 데는 천국과 같은 곳일 것이다.

 

 

마루와 아라라는 조금 특이한 이름은 김용현 선생이 지었는데, 70년대 쯤 어린이 방송극에 나왔던 주인공 마루치와 아라치의 머리글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했다. 그 방송극의 주제가는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 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남동생은 이리저리 조합해 이루라고 지은 모양이었다. 재미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너무 귀엽고 예쁘다는 것이다. 마루는 어른들이 좋아 할 얼굴과 귀염성이 있고 아라는 나중에 크면 미인이 될 몸매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부터는 공소에서 복사를 보는데 둘이 하얀 복사 복을 입고 제대의 신부님 양 쪽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천사가 따로 없다. 그런 날은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귀엽다고 칭찬을 해주고 온다.

 

딸이 없어서인지 남의 집 예쁜 딸들을 보면 많이 부럽다. 내개 딸이 하나 있었으면 맨날 머리 위에다 이고 살았을 텐데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정말 부러울 때가 많다. 나이가 드니 더 그렇다. 아무도 내게 귀여운 딸과 같은 재롱이나 애교를 보여주는 이가 없다. 집사람도, 누이들도, 조카딸들도 다 그렇다. 내가 무뚝뚝해서 그런가 보다. 뭐 그리 대수럽지 않게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내심으로는 섭섭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이웃에 천사 같은 딸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내가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얘들과 좀 친하고 싶은데 저희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나만 짝사랑하는 격이지만 그래도 자주 볼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김용현 선생이 닭을 키우는데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계란이 나오기 시작한다고 했다. 얼마 전 먹어보라고 계란을 한 판 같다 주었는데 크기는 작지만 청계 알도 있고 아주 깨끗하고 신선해 보였다. 프라이를 해 먹어 보니 노른자가 아주 탄력이 있고 맛도 뛰어났다. 밭에다 거위와 함께 놓아 키우는데 사료를 먹이기는 하지만 풀밭에서 벌레도 잡아먹고 거의 자연 상태로 자라는 것이어서 그럴 것이다. 거위 알은 엄청 커서 계란의 두 배가 넘었다. 한 개만 깨도 프라이팬이 가득 찼다.

 

계란이 충분히 나온다고 하니 이것을 구입해 먹을 생각이 났다. 배달은 두 천사가 해주는 조건으로 이주일마다  열다섯 개들이 한 판에 오천 원의 용돈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부모들도 좋다고 했다. 거위 알은 덤으로 두어 개씩 끼워주기로 하고 한 달에 두 번이면 천사들은 한 사람 당 오천 원의 용돈이 생기는 셈이고, 나는 매일 한 개씩 천사가 같다 준 신선한 계란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 크게 용돈이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용돈을 모아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년에 천원을 인상해주고 그 다음에도 해마다 천 원씩 더 인상해주겠다고 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어제는 내심 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그냥 지나가 버려 오늘 김 선생한테 종주먹을 대며 계란 보내라고 큰 소리를 쳤던 것이다. 계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천사를 보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하교할 때 늘 우리 집에 들러 운이하고 놀기도 하고 쉬었다 갔으면 좋으련만. 앞마당에 한창 열리기 시작한 딸기를 한 봉지 따서 들려주었다. 작년에 황선생님한테 얻어온 것인데 제법 많이 열려 아침마다 일삼아 따먹어야 될 처지가 되었다. 크기는 작지만 달고 맛있는데 비가 내린 뒤라 더 깨끗하고 곱게 익어 천사들에게 줄 선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요즘에는 노지 딸기가 없어 쉽게 맛보기 어려운 과일이다.

 

계란을 정리하려고 보니 지난번에 받았던 것이 여러 개 남아있었다. 내친 김에 거위 알을 하나 꺼내 볶아 먹었다. 그리고 가까운 이웃에 이런 천사들을 보내준 하느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우리 천사들에게 늘 건강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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