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형 선생이 집을 방문했다. 실상사에서 나이 든 어느 보살의 결혼식이 열렸는데 사랑가를 불러줄 소리꾼의 고수로 초대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재주도 많은 사람이다. 마침 그 결혼식에 참석한 영임씨를 만나 같이 올라왔다. 그렇잖아도 실상사 쪽에서 풍악소리가 울리고 큰 소리들이 나 초파일 전에 이루어지는 기념행사인가 했었다.
이선생은 소리를 배우면서 북장단을 지도해 주러 온 것이 인연이 되 알게 된 사람이다. 현직교사인데 국악에 관심이 많아 대금부터 시작해 북을 배우고 요즘은 해금과 전통 무용까지 배우고 있으니 가히 풍류를 아는 사람이다. 계절이 좋으니 한 번 놀러오라는 전화를 해볼까도 했었는데 때를 맞춘 듯 잘 찾아 왔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지난겨울 만들어 놓은 오동나무 병풍에 관심을 보이더니 그 글을 한 번 읽어달라고 했다. 혼쾌히 승낙을 하고 읽으면서 설명을 해줄까 하는데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마침 거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대금을 들고 왔다. 대금연주로 반주를 넣어 줄 테니 같이 읽으라는 것이었다. 십여 년이나 닦은 솜씨다. 소쇄원인 듯 한 창작곡을 먼저 연주하더니 뒤이어 산조가락이 이어졌다. 대금소리의 운율에 맞추어 산중신곡을 천천히 읊었다. 마치 시낭송을 할 때 깔리는 잔잔한 음악처럼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옆에서 영임씨와 이선생 사모님이 좋다! 소리를 연발 하는데 읽는 나도 흥이 저절로 일어났다. 사진은 영임씨가 보기가 좋다고 휴대폰으로 찍은 것이다.
이 선생의 본가는 임실인데 전통한옥의 규모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지금은 남원에 살고 있지만 자주 들러 관리를 한다고 했다. 집 뒤의 소나무 숲에는 옛날부터 백로가 날아와 서식한다는데 아마 이 선생의 풍류가 그런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언제 한 번 놀러오라고 하는데 시간이 나면 가 볼 생각이다. 지난 해 같이 대금 공부를 해 보자고 제안을 해 박원배 선생을 중심으로 회원을 모집해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초급자 수준만 대여섯 따로 모아 공부 모임을 만들고 결국 이 선생은 차이가 너무 나 참여를 하지 못했다. 나도 같이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하였다. 그래도 국악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를 한 사람이라도 가까이 알게 됐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모처럼 즐거웠다. 차 한 잔을 나누고 식구들이 있어 일찍 돌아갔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역시 풍류란 마음이 맞는 벗과 즐겨야 하는 것인가 보다. 이런 운치는 아무나 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선비들이 시회를 열고 시문을 지어 읊으며 즐긴 풍류라는 것도 아무 때나 아무 하고나 이루어졌던 일이 아닌 것이다. 서로 격이 맞고 풍류를 알며 즐길 줄 알아야 모일 수 있으며 인격적인 면모가 갖추어져야 어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양반 문화라고 비판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러한 우아하고 고매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퇴폐적이고 소비적인 취향이나 놀음보다야 백배 낫지 않겠는가?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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