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일은 감이다. 아무리 다른 맛있는 과일이 넘쳐난다 해도 가을을 상징하는 것은 역시 붉은 감이 으뜸이다. 그 정겨움, 따뜻함, 어린 날의 향수를 생각나게 하는 감만 한 과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감을 수확할 때가 되었지만 여기저기 따지 않는 감들이 많다. 덕분에 보기는 좋지만 그만큼 젊은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차일피일 미루다 얼마 열리지도 않은 감 두 그루를 아직도 다 따지 못하고 있다. 전혀 손을 보지 않으니 감의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홍시를 따 먹어보면 맛이 그만이다.
감이 익으니 이집 저집 곶감을 깎기 시작한다. 날씨가 차지 않아 미루었는데 이제 깎을 철이 된 것이다. 나도 두어 접 깎았다. 처음에는 우리 감으로 곶감을 깍아보았는데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감이 적고 상태가 고르지 않아 지금은 다른 곳에서 구입해 곶감을 깎는다. 주변의 귀농한 친구들은 상당히 많은 감을 깎아 부업을 하기도 하지만 나야 내 먹을 정도만 깎는다.
이번에는 부산의 친구들이 같이 감을 깎기로 해 다섯 상자를 주문했다. 청도 반시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올 해는 청도 반시를 구입한다기에 나도 같이 부탁을 했는데 감은 이미 일주일 전에 도착했다.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곶감을 권하면 그 맛에 감탄하는지라 그러지 말고 이번에는 같이 곶감을 깎아 걸어 놓는게 어떻냐고 제안을 했더니 모두 좋다고 하여 이루어진 일이다. 이 동네에도 감은 제법 있지만 많은 양을 깎을려면 아무래도 청과상을 통해 구입해야 한다.
지난 주말, 부산의 친구들이 약속했던 곶감을 깎으러 방문을 했다. 오는 길에 합천의 고기 집에 들러 쇠고기까지 잔뜩 사들고 왔다. 오랜만에 고기 맛도 보고 며칠 전 캔 토란에다 국을 끓이니 그것도 맛이 있었다. 오자마자 감을 고른 뒤에 판을 벌이고 감을 깎기 시작했다. 여럿이 이야기 해 가면서 깎다보니 속도가 아주 빨랐다. 홍시가 많이 나와 따로 골라 내 놓았다. 그것대로 가지고 가서 나누어 먹으면 좋을 것이다. 부인들이 안 해본 일이라 아주 즐거워했다. 저녁을 먹은 뒤 남은 것까지 모두 깎고 마무리를 했다. 홍시를 빼고도 다섯 접이 나왔다.
내친 김에 우선 절반을 거실 앞에 걸어놓았더니 꽃등을 단 듯 정취가 물씬 나고 보기가 좋았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같이 마음이 넉넉해지고 흐뭇해졌다. 나머지는 내일 이웃 집 처마를 빌려 매달 것이다. 여러가지 활동으로 바쁜 산청의 김선생 내외도 저녁에 합류해 늦게까지 차를 나누고 내가 담근 포도주 맛도 보고, 이런저런 시국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어느덧 육십이 넘거나 다 된 친구들이다. 젊어서부터 서로 우의를 나누던 사이니 참으로 지난한 세월을 서로 위로하고 희노애락을 같이 한 친구들이다.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를 정리했다.
다음날 아침 상중기의 미경씨의 집에다 남은 감을 걸어 놓고 온 뒤, 우리 감 따 논 것으로는 감말랭이를 만들 생각이라고 했더니 김태련 여사가 금방 칼을 들고 나서서 독려해 모두 잘라 채반에 늘어놓았다. 여섯 채반이나 되었다. 부지런하고 명랑한 분이다. 곶감을 걸어 놓은 아래쪽에다 말려 놓았는데 색깔이 참 좋았다. 이제 한두 달 후면 맛있는 곶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덤으로 감말랭이도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걷이도 거의 끝났다. 큰 수확은 아니지만 나락과 이런저런 가을 곡식들을 털어 부대와 통에 담아 하우스 안에 늘어놓았다. 다시 한 번 손을 봐야하기는 하지만 큰일은 마친 셈이다. 마늘과 양파도 무사히 심었고 어제 오늘 비까지 잘 내렸으니 아마 뿌리를 잘 내릴 것이다. 무 배추도 잘 자라고 있다. 다른 집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그래도 해마다 부족하지 않게 김장을 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올해는 동생들과 같이 하기로 했으니 양이 좀 많아야 한다.
산 아래 쪽까지 단풍이 내려왔다. 노란 은행잎들이 장관이다. 우리 집 은행은 언제 큰 나무가 되려나? 며칠 후에는 반야봉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겨울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벼루를 내리고, 칼도 손 보고, 서각 서너 점, 탁자 소품을 두어 개, 그리고 십자가의 길 제 2처를 조각해 볼 생각이다. 세상의 죄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 고난, 우리의 십자가를 말없이 짊어진 예수의 모습을...
소은.
'산내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이 온다고 난리법석 (0) | 2014.12.01 |
---|---|
달빛에 취하다. (0) | 2014.11.09 |
차 한 잔 (0) | 2014.09.12 |
가을이 오다. (0) | 2014.09.05 |
산 공부를 다녀오다 (0) | 2014.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