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3박 4일간으로 작년에 갔던 칠선계곡 쪽으로 산 공부를 갔다 왔다. 이번에는 다들 일정이 바빠 작년보다 하루를 줄였다. 계임씨가 이장 일을 보는 운봉의 행정마을로 갈까도 했지만 아무래도 폭포와 계곡을 포기할 수 없어 다시 그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작년보다 집안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마당의 풀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아마 올해는 관리하는 분이 신경을 좀 쓴 모양이었다. 가던 길로 우선 물속에 인사부터 하러 들어갔다. 시원했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물이 더 깊고 맑았다.
올해는 새로 들어 온 정선생이 요리를 도맡아 하겠다고 하여 한결 수월하게 지내게 되었다. 나머지는 보조와 설거지만 하기로 하였다. 아침 식사 후 개별 소리 지도, 점심 먹고 북 연습과 단체 소리공부, 저녁식사 후 다시 북장단 연습으로 일정이 짜여졌다. 나는 개인 공부로 단가인 강상풍월을 배우기로 했다. 북을 지도하러 온 이성형 선생이 같이 하겠다고 하여 둘이 함께 지도를 받았다. 전체 공부로는 고고천변의 앞 대목인 별주부가 수궁에서 용왕과 저의 모친, 마누라와 작별하고 나오는 대목이었다.
강상에 둥~둥 떴난 배~. 풍월~ 실러~ 가는 밴지~
강상풍월은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소리 선생을 졸라 배우게 된 것이다. 단가이긴 하지만 참 매력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 주 레퍼토리로 삼을 생각이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시작해 보니 해야 할 공부는 딴전이었고 짬짬이 시간만 나면 계곡으로 쫓아가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특히 진철씨는 유난히 물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수시로 들락날락 거렸다. 나중에는 누구 볼 사람도 없고 옷을 홀랑 다 벗고 바위 위에 누워 있기도 했다. 태양초 만든다는 누군가의 농담에 한참이나 웃었다.
매 식사 때마다 정선생의 비장의 요리들이 제공되었다. 주로 값싸게 구입한 돼지고기로 만든 것이긴 했으나 어쨌든 이것저것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으니 항상 누군가의 봉사나 희생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편해지고 즐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봉사하는 사람도 역시 즐거워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리라. 중국집에서나 쓰는 커다란 팬을 들고 와 비빔국수, 김치찌개, 카레에다 오징어 튀김, 탕수육과 족발까지 만들어 냈다. 미역을 한 봉지 통째로 뜯어 물에 푸는 바람에 나중에는 손이 너무 크다는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먹다 남은 복숭아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익힌 것은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저녁이면 정선생의 입담 좋은 야설이 종횡무진 사람들의 배를 잡게 했다. 다소 거칠긴 했으나 늘 그렇듯 이런 자리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고 분위기를 돋우기도 한다. 이튿날 저녁에는 참여하지 못한 상재씨가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와 술판이 벌어졌고, 다음날에는 이 성형 선생의 지인들이 찾아와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특히 저녁 무렵이 되면 이성형 선생의 대금 연주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듯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렸다.
북장단을 배우는데 이번에는 진양조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북은 사실 진양조가 가장 간단한 형태다. 그러나 소리는 진양조가 제일 어려워 늘어지는 가사를 제대로 따라 부르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결국 별주부 모친이 별주부 세상 나가는 것을 말리는 진양조 대목에서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못해 끝맺음을 다 하지 못하고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부를 하다가 심심하면 폭포수 아래에 가서 서투른 소리를 내지르며 객기를 부리기도 하고, 시원한 물속에 풍덩 뛰어들기도 하고, 이 성형선생의 대금소리를 청해 듣기도 하며 마치 기다렸던 마지막 휴가인 듯 모처럼 일을 잊고 덕분에 여름 마무리를 잘 하고 올 수 있었다.
술을 한 잔 하거나 얘기 끝에 다소의 무절제함과 소란함은 조금 거슬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이니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일테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너무 잦거나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여럿이 모여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니 서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음치에 가까워 늘 소리 선생님한테 핀잔을 듣는 총무 임선영씨가 수고가 많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끝까지 배우러 나오는 선영씨가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 덕분에 소리 팀이 유지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소리를 배운 들 얼마나 더 배울 것이며, 언제 제대로 된 소리나 한 번 내볼 수는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매주 소리를 배운다고 모이고 공부하는 것이 반 농사꾼의 상당한 즐거움이고, 간혹 혼자서 일을 하거나 또는 친구들이 왔을 때 부족하나마 배운 가락을 한 자락 정도 흥얼거릴 수 있으니 그것만 해도 훌륭한 일이다.
이 배 저 배 다 버~리고 한송정 들어가, 길고 긴 솔을 비어, 조그마 허게 배 무어~ 타고~, 술과 안주 많----이 실어~ 술~렁 배 뛰어라. 강상풍월을 열심히 읊어 본다.
강사아아 아아아 앙~에 터 닦어, 귀이목 위소 허여 두우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에----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리임살이 요마아으은 허며언 넉너억 헐끄나~, 거어드렁 거리고오 놀아 보세. 부르는 재미가 소록소록 하다.
산 공부를 마치고.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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