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골짜기에 봄이 만발하여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다. 집안 정리로 바쁘기는 하지만 도저히 앉아있기만은 봄날이 너무 좋아 점심을 먹고 한 바퀴를 둘러 보았다.
마천쪽으로 양쪽 산비탈에는 산벚꽃이 산을 타고 오르고 길가에는 복사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동네마다 배꽃도 한창이다. 모두 한폭의 그림만 같다. 이렇게 잘 어울리는 풍경을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저기에도 산도화가 피어 있다. 요염한 색깔로 사람을 유혹하는듯 현란하다. 고인들이 무릉도원이니 도화동이니 했던 말들을 예사로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그 말의 뜻을 헤아릴듯하다. 매화나 살구, 벚꽃은 이미 때가 지났는데 산 비탈로 무수히 피어나는 산복숭아꽃은 따뜻한 봄 날씨와 어울려 너무도 화려하다. 아마 이보다 더 봄을 잘 드러내는 꽃은 없을것 같다.
낮은 곳에 피는 이른 봄꽃은 지고 이제는 산으로 봄이 올라가고 있다. 지난 겨울 내내 얼음으로 덮혀있던 골짜기에도 봄이 무르익었다. 계곡을 따라 봄이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새로이 연두빛 봄옷을 갈아입은 산마다 그대로 꽃천지다.
봄은 물속에도 와 있다. 봄은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바람과 물빛으로부터 봄을 느낀다. 저 물을 보라. 아무 거리낌없는 무욕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봄볕을 받아 따뜻해진 시냇물이 경쾌하게 소리내며 흘러내린다.
봄은 거대한 행진이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생명의 힘으로 온 산과 계곡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다. 산을 타고 오른 봄이 등성이에 모여 마치 꽃잔치를 벌인 듯하다. 모든 나무가 곧 꽃이다. 고향의 봄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풍경이다.
그러나 이곳은 별유천지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다. 골짜기의 다락논마다 봄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층층이 쌏인 다락논은 시간과 의지의 위대함이고 경이로움이며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본래의 모습이다. 그 속에서 땅을 가꾸며 자연과 같이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또 겨울이 되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때맞춰 변화하고 움직인다. 우리는 자연과 하늘이 주는 축복으로 거기에 깃들어 사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 앞에 겸허하고 순응하여야 한다. 빌딩과 다리와 발전소는 수명이 있지만 자연은 늘 그대로이다. 시멘트와 포크레인을, 아스팔트와 자동차를, 전기와 컴퓨터를 너무 자랑하지 말 일이다.
2011년 봄. 송하산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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