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으면서 나는 두가지 자연에 대해 눈 뜨기 시작했다. 하나는 이른 봄 드러나는 나무의 연둣빛 색깔이며, 또 하나는 산의 선이다.
초봄의 나뭇잎은 나로하여금 새로운 심미안을 가지게 해 주었다. 나무 끝에서 피기 시작하는 연둣빛과 산 등성이로 점점이 물들어가는 초록빛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녹색은 곧 생명의 색깔이며 새로운 시작의 색이고, 단언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라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초록의 눈부심을 마음으로 느끼고 새 생명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산의 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산의 모양을 드러내는 능선이 그야말로 우리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하나의 모습이 다르면서도 그것이 주는 자연스러움, 균형감, 조화로움에 반하였다. 우뚝 서거나 뽀족하거나 또는 중국의 산수화에 나오는 듯한 기이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각인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선의 아름다움에 비로소 눈을 뜬 것이다. 지금도 산을 보고 있으면 늘 편안하고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 것은 그러한 자연스러운 선이 주는 친근감 때문일 것이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인 면의 분할은 어린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미적인 영감이라기 보다 이런 그림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구나 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여 무엇이 이 그림을 유명하게 했을까?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 점이다. 그는 가장 단순한 조형요소로만으로도 사물의 본질을 나타낼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대상을 볼 때 면의 조화로운 분할과 선의 배치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했다. 어떤 조형물이든 단순한 선 하나의 길이나 위치가, 면의 분할이 이루어지는 경계나 형태가 완성도에 있어서는 대단히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구도란 면과 선의 공간배치라고도 볼 수 있다.
집을 짓고 난 뒤 주변과 마당을 정리할 때도 이러한 나의 성벽은 어디 갈 수 없었다. 텃밭과 뒷마당, 건물, 앞마당과 진입로, 화단과 밭 모두 적당한 간격과 거리를 고려해 배치를 한 것이다. 특히 밭의 크기와 형태는 집에서 쳐다볼 때, 진입로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올 때, 밭에 일하러 갈 때 등을 고려해 몇 번이고 수정해서 결정 한 것이다.
밭의 두둑도 넓이와 도랑의 간격은 작물을 심을 때와 오고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 것이다. 고랑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할할 생각도 하였는데 그러나 가장 간단한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모두 일자로 하였다. 양쪽에서 편하게 손이 갈 수 있는 정도의 넓이, 가운데 고랑으로는 작은 손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옆 마당의 진입로와 수돗가, 그리고 주차장 부분은 곡선으로 처리했다. 자갈을 깔 때 그양이 부족할뿐만 아니라 모든 마당을 돌로 깐다는 것이 탐탁치 않아 자동차가 움직일 공간과 주차할 곳만 자갈을 깔고 나머지는 곡선으로 배치하고 수도쪽만 자갈로 연결 하였다. 모든 부분의 경계를 자연스러우면서도 주변과 잘 어울리는 형태로 그림을 그리듯 구분하여 놓았더니 오고가는 사람들이 늘 쳐다보고 간다.
뒷마당의 텃밭은 앞으로 심고 가꿀 채소나 작물의 위치나 양을 고려하여 밭을 나누고 고랑을 내었다. 종류가 많아 상당히 세분하여 면을 쪼갰는데 채소의 양을 가늠하지 못해 다소 어긋난 부분도 있다. 식물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위치나 간격이 잘못된 것도 많았다.
장독대, 그리고 수도와 쓰레기장은 접근성을 염두에 두고 분할 했다. 수도는 옆마당과 뒷마당에 각각 하나씩 설치를 했는데 옆마당의 것은 일하고 난 뒤 사용할 것이고 이것은 부엌에서 나와 사용할 용도이다. 텃밭과 장독대 사이에 지면보다는 높지만 텃밭보다는 약간 낮게 설치했다. 수돗가의 돌을 놓을 때 상당히 신경을 썼는데 돌의 모양과 형태가 고른 것을 찾아 빈틈없이 맞춘 것이다.
연못은 둥글면서도 도랑쪽으로 변화를 주었고 연못에 진입하는 마당은 밭과 고랑사이에 경계를 만들어 직선과 곡선으로 마감했다. 나중에 가장자리 쪽으로 작은 나무나 꽃 등을 심어 조경을 할 생각이며 중간에 물도랑을 건너 뒷밭으로 가는 작은 돌다리를 만들었다. 모든 부분은 다 선의 형태나 길이를 고려해서 결정했음은 두말할 것 없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나무를 심을 화단이다. 우선 임시로 몇개의 작은 나무를 심어 놨는데 차차 큰 나무를 옮길 작정이며 집 주변에도 크고 작은 나무를 적절이 심어 사철 꽃과 나무에 둘러싸이게 할 계획이다. 너무 개방되어 있는 주변을 보호할 겸 대나무를 뒤에 둘렀는데 좀 더 보강을 해야할 것 같고, 집 뒤의 논과 밭은 적절한 농사와 작물 배치로 구분할 생각이다.
이 집을 나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길 생각이다. 늘 가꾸고 다듬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울창한 나무 숲에 둘러싸인 집으로 만들 계획이다. 겨우 집에다 자기의 마지막 인생을 걸겠느냐고 말한다면 그렇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외연의 확장이 아니라 내면의 충실을 기하겠다는 말이다. 낙동강을 파 내는 것보다,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일보다,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고 댐을 막는 일보다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았으니...
오늘도 열심히 마당의 풀을 매고 있는데 뒷밭으로 올라가던 동네 할머니가 또 풀 매느냐 하며 마당이 깨끗해 졌다고 칭찬했다. 내려올 때는 양손으로 번갈아 풀을 뜯는 것을 보고 '아이고 맨날 풀을 매더니 이제는 풀매는 선생이 되었네!' 하고 감탄을 하시었다. 여기와서 다시 선생소리를 들었다. 평생 업으로 삼았던 선생이라는 밥벌이를 작파하고 왔는데 다시 그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로 쓸쓸해진 어느 가을 날 마당을 가꾸며.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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