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추수

방산하송 2011. 9. 26. 10:41

추수란 곡식이 익어 걷어 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보통 가을 추수라고 하면 벼 베기를 말한다. 그만큼 농사의 가장 기본이 벼농사이고 우리의 식량이 곧 쌀이기 때문이다. 올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염려를 하고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농사가 벼농사이다. 나는 이곳에 들어오면서 쌀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시골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먹을 쌀을 직접 짓는 것만큼 시골에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겨우 한마지기도 안 되는 논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잘 가꾸면 내가 먹을 일 년치 양식은 나오겠다는 생각에 부득부득 벼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벼를 추수하게 되었다. 첫 수확이다. 이런저런 채소와 작물을 키우고 거둬들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첫 수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양이 많지 않아 직접 벨 수도 있지만 그다음 타작할 일이 난감하여 옆 논에 벼를 벨 때 같이 베기로 하였다. 우리 벼는 늦벼여서 다소 시기가 빠른 편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로 컴바인을 부를 수가 없기 때문에 같이 베기로 한 것이다. 동네 분들이 '먹을 쌀은 너무 익은 것 보다 약간 일찍 베어야 맛이 좋다'고 내 걱정을 덜어주었다. 벼를 베기 전 미리 컴바인이 들어갈 자리와 가장자리를 정리 해 놓아야 하는데 하루 전 날 낫을 들고 올라가 손을 대기 전에 우선 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큰 탈 없이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고.

 

다음날 정작 벼를 베고 타작하는 시간은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따로 담을 필요도 없이 마당에 깔개를 깔고 직접 부어달라고 했는데 나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막상 부어 논 벼의 양이 생각보다 너무 적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망하는 눈치가 보였는지 옆에서 또 위로를 하였다. '늦벼가 맛은 좋은데 수확이 좀 적어. 그래도 일 년 양식은 충분하겠네.' 한마지기도 안 돼는 논이니 벼의 양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막상 마당에 덕석을 깔고 널어놓으니 제법 양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순전히 주변의 도움으로 지은 농사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서, 모를 얻어서, 우렁이를 어디서 사서 얼마나 넣는지 안내 해줘서, 물대는 것을 도와줘서,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줘서, 마지막에는 벼를 베는 것까지 모두 주변의 도움과 안내와 걱정으로 지은 농사다. 특히 매일 우리 집 주변으로 바람을 쏘이며 산책을 하는 김성룡 어른은 내가 짓는 농사의 멘토격이다. 하루에도 두서너 번씩 지나가며 늘 살펴보고 해야 할 것을 귀띔해 주었다. 나에게 논을 판 분인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건강이 안 좋은 편이다. 운동 삼아 우리 집 뒤로 한 바퀴씩 도는데 그 때마다 이것저것 살펴보고 일러주시는 것이다.

 

다행히 벼가 잘 자라 주었다. 장마가 끝난 후 여기저기 농약을 쳐도 끝까지 모르는 척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깜부기가 잔뜩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내심 걱정이 꽉 됐는데  김성룡 어른 왈  '괜찮어. 걱정할 것 없어. 나락이 잘되면 깜부기가 생기는 법이여!' 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 소리에 얼마나 안도를 했는지 모른다. 다른 논에 물을 빼길래 나도 따라 물을 대지 않았더니 우리 벼는 아직 덜 익어서 물을 더 대야 한다고 일러 줬다. 막상 양수기가 고장 나 마지막에는 벼가 여무는데 조금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벼를 베기 전 양재천 어른은 선생을 해서 그런지 벼가 병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잘 컷다고 했다. 사실 옆의 논은 바람에 태반이 넘어가고 넘어진 벼는 일부 상하기도 했지만 우리 벼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잘 컷다. 비료가 적어 벼이삭이 적게 달려서인지는 몰라도 벼가 깨끗하고 꼿꼿하게 잘 자랐던 것이다.

 

 

시골 분들이야 매년 하는 농사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로서는 얼마나 뿌듯하고 대견한 일인지 모른다. 하루를 말려 부대에 담으니 다섯 부대가 나왔다. 쌀이 두가마니 가까이 나오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어간 경작비용만 해도 벼 베는 삯 4만원까지 보태면 쌀 한 가마니 값도 넘게 들었다. 그러고도 아직 도정료가 남아있지 않은가? 산청의 김 선생은 그 쌀 한가마니는 백만 원도 넘는 쌀이라고 했다. 그 말을 위로삼아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무사히 쌀을 수확한 것만  해도 사실은 감지덕지다. 무엇보다 내가 먹을 식량을 스스로 확보했으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스스로 칭찬할 만하지 않은가?

 

나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쌀값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규모로 지으면 경비가 다소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 가마니의 수매가가 15만원을 넘어서지 못하니 쌀농사를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가장 기본이 되는 식량의 가격을 무조건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니, 결국 농사짓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도시사람들의 식량을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쌀농사의 경우 쌀값을 묶는 대신 경작비용을 보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직불금을 현실화하여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장을 해 주던지. 그래야 안정적으로 쌀농사의 경작이 이루어질 것이고 식량 확보도 가능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커피 한잔 값이 얼마인가? 라면 한 개의 값, 아이들 과자 값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면 쌀 한 되의 값은?

 

시골에 산다고 해서 반드시 농사를 지으란 법은 없다. 그냥 와서 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시골에서 사업을 하거나 크게 환경을 해치지 않는다면 가공산업, 제조업 같은 생산시설도 좋다.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니까. 기본적인 자급자족이 이루어지려면 공장도, 병원도, 학교도, 가게도, 찻집도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마을기업이라고 하는 공동체가 더러 생기는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기본적 바탕은 농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농촌을 개발한다고 하면서 그 주력을 다른 산업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러야 한다. 모든 시골이 관광지화, 유원지화, 산업단지화가 된다면 도시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정부도 농촌에 대한 투자나 지원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농촌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결국 도시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되며, 복잡한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역할도 할 수 있으니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균형 잡힌 국가 경영이고 공생이다.

 

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풀도 더 이상 극성을 부리지 않으니 나도 여유가 생긴다.  가장 걱정했던 추수도 무사히 마쳤고 본격적으로 개인적인 일과 독서, 나무를 고르는 일, 그리고 여행을 해 볼 때가 되었다. 해가 짧아지니 서서히 월동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하루의 반복, 계절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살지만 그러나 인생은 반복이 없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야 하고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좋은 계절 어디 먼 섬에라도 한번 들러 바다를 보고 생선회도 먹고 싶다.

 

 

신묘 가을. 소나무집에서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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