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나무 깎는 즐거움

방산하송 2012. 12. 19. 11:04

겨울 나무 작업을 시작하고 싶어도 나무가 없어 미루고만 있었는데 마침 산청 김 선생 동네 제재소에 괜찮은 나무들이 보인다고 하여 들렀다. 적당한 크기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있었다. 주인에게 연락을 하니 필요한 만큼 팔겠다고 했다. 은행나무 한 토막, 느티나무 한 토막을 켜주고 각각 20만원에 사기로 하고 참죽나무까지 포함해 오십만 원 어치의 나무를 구했다. 나무마다 대여섯 개의 판자가 나왔으니 당분간 작업할 나무는 충분히 확보한 셈이다.

 

제재소에 들렀을 때 오래 된 집에서 나온 소나무를 켜놓은 것들이 있어 김 선생 보고 한 개 구입하라고 했다. 김선생 방 입구에 걸어놓았던 습작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작품을 하나 파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 겨울에는 그것부터 먼저 시작할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적당한 크기로 나무를 자른 뒤 다음 날부터 글을 쓰고 글귀를 파기 시작해 사흘 만에 완성했다. 산불재고 유선즉명(높다고 좋은 산이 아니라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 유우석의 누실명 첫 글이다. 그동안 이 글귀를 여러 점 파서 선물하고 했는데 팔 때마다 그 뜻을 다시 생각해 본다. 외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실이 중요하다는 것, 좋은 집보다는 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무를 파고 글을 새길 때마다 느끼지만 나무를 깎고 다듬는 즐거움은 흙을 만지며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특히 싱싱한 나무가 깎일 때 나는 냄새나 깨끗한 단면은 신선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어서 좋다. 나무를 깎거나 다듬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무의 무늬나 질감에 도취될 때도 있다. 어릴 때부터 나무를 좋아하고 무얼 만들기를 좋아하는 성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무로 만든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과도하게 모양이 복잡하거나 색깔이 화려한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역시 나무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소박한 형태이면서 단정한 것이 마음에 든다. 간혹 괴목이라고 하여 이상하게 구부러지고 구멍 난 나무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물건들을 보면 품위가 떨어지고 마음까지 심란해지는 것 같아 친근감이 잘 가지 않는다. 

 

서각도 그렇지만 나무제품의 주안점은 세 가지 정도일 것이다. 우선 견고함이다. 그리고 실용성과 예술성이 동시에 있어야 할 것이다. 목공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맛물리는 곳을 이어내고 단단하게 고정하는 작업이 어렵다. 그것은 순전히 기술적인 요령이나 경험의 소산일 것이다. 나무를 다루다 보면 차츰 솜씨가 늘겠지만 진즉부터 의자나 탁자를 독창적인 미술품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일반적인 것이 아닌 독특하면서도 미적인 탁월함이 돋보이는 그런 물건을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목공을 같이 하기로 했던 영수 씨한테 연락을 해보니 곧 모임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목공을 시작하면 우선 차탁부터 한 개 만들어 볼 생각이다. 탁자를 만들면서 목공기술이나 도구 사용법도 익히면 될 것이다. 수업료가 쌀 20키로 한 부대라고 하는데 집에 있는 쌀로 가름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적당하다. 혼자 지내는데는 목공도 제법 괜찮은 소일거리다. 무언가 만든다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므로. 올 겨울 그런대로 쓸만하고 봐줄만한 물건이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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