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모내기는 모두 끝났다. 내가 모심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못자리 팀이 품앗이로 도우러 와 반 나절 만에 마쳤다. 모를 다 심고 물을 댄 논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손 모내기를 했으니 거의 보식할 곳도 없다. 단지 못줄도 없이 심은 터라 중간 중간에 약간씩 줄 간격이 틀어진 곳만 손을 보았다. 그동안 모판을 만들고 싹을 틔우고 하우스 안에서 아침저녁 물주며 모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모내기를 마치고 나니 큰일을 마친 것 같아 한시름 놓게 되었다. 한 해 농사의 첫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이다.
어제 아침 일찍 영수씨, 진철씨, 윤동씨와 진택씨가 올라오고 나중에는 위쪽 김용현 선생도 와서 거들었다. 손바닥만 한 논을 가지고 나까지 여섯이나 붙었으니 일이랄 것도 없었다. 새참도 먹기 전에 끝날 기색이었다. 억지로 중단하고 중참을 먹었다. 아내가 부쳐 온 부추 전을 안주삼아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였다. 오현천씨네 집사람이 냉커피를 만들어 같다 주었다. 워낙 일이 빨리 진행되는 바람에 참을 먹은 후에는 놀아가며 했는데도 정오가 되기 전에 모두 마치고 말았다. 거참! 혼자 할 때는 꼬박 사흘이 너머 걸렸는데 너무 싱겁게 끝난 셈이었다. 역시 일이란 모여서 하는 것이 훨씬 진척도 빠르고 힘도 덜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품앗이가 필요한 모양이다. 저 친구들이 우리 논에 품앗이를 온 것도 나 역시 그들의 모내기를 도와주고 거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물을 틀어 놓은 뒤 점심을 먹으로 내려왔다.
소리선생님인 박선생도 오고, 아랫동네 영임씨도 오고, 선영씨와 새로 소리 팀에 새로 합류한 정선생과 옆집 오현천씨도 불러 같이 앉았다. 모두 한 가지 씩은 반찬거리를 들고 왔다. 전 날 인월 장에 나가 토종닭 두 마리와 육계 한 마리를 사다 놓았는데 이것저것 넣고 바깥에서 푹 고아 백숙을 만들었다. 집 뒤 처마 밑 그늘에다 자리를 펴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닭이 잘 삶겨 부드러웠다. 심어만 놓고 미처 거두지 못해 웃자란 상추로 만든 겉절이도 입맛을 끌었다. 일은 손톱만큼이나 해 놓고 점심은 거창하게 먹는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재미가 있었다. 사실 모내기보다 못밥 낼 일이 걱정이었는데 영임씨와 박선생이 거들어 한 손 덜게 되었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으니 잔치판 비슷해졌다.
닭죽까지 잘 먹고 소주도 두어 잔 씩 걸친 뒤 내친 김에 소리나 한 자락 씩 들어 보자고 부추겼다. 여기저기서 같이 흥을 돋웠다. 제일 먼저 막내 격인 정선생이 최근에 배운 쑥대머리를 선보이고, 내가 사철가를 요란하게 부른 뒤, 소리선생님의 농부가가 이어졌다. 모처럼 자리에 어울리는 좋은 소리를 즐겁게 들었다. 다른 소리 몇 자락을 더 듣고 마지막으로 진철씨가 춘향가 중 사랑가 한 토막을 불렀다. 일은 마쳤고 그늘은 시원하고 저절로 여유가 생기고 느긋해져 쉬이 일어나지 못하고 늦게까지 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귀농한 사람들이다. 직장에 나가는 김용현 선생과 소리선생님만 제외하면 모두가 자의로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동네 사람들은 이미 포기해버린 못자리 만들기나 모심는 품앗이 같은 것들을 주고받으며 사는 이 친구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물론 현지인들이 보면 조금 어설프기도 하겠지만 이 친구들이 단순히 농사만을 목적으로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농사라는 것이 내가 나이들어 사는 인생의 한 수단이고 방편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길을 통해 내 삶이 보다 더 건강해지고 단순해지며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좀 더 충만해질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이다. 다만 그와 같은 것을 추구하는데 발생하는 다소의 불편함, 힘듦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참아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또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유월이 되면 콩, 들깨 심고 감자와 마늘 양파, 밀을 수확해야 한다. 여름 푸성귀나 고추 등도 자주 손을 봐야 하고 특히 풀 베는 일은 무척이나 걱정된다. 뒷담벼락 쪽은 잡초가 무성해져 손 보는 김에 대나무까지 정리했더니 시원해서 보기가 좋다. 어머님 제사가 곧 다가온다. 산딸나무가 몇 개의 꽃을 피웠다. 지천으로 피었던 붓꽃이 시들기 시작하자 연못에 수련이 올라왔다. 둘째 놈은 이번 주말에 한 번 온다고 하더니 연락도 없다. 딸기는 너무 많이 열려 처치곤란이다. 나중에 잼을 만들어 볼까? 올해는 매실주도 담가보아야겠다. 마늘쫑도 올라오던데...
모내기를 마치고.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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